"구조조정이 다 완료된 후에야 금융비용을 커버하는 수준인데 문제는 내년 이후다. 내년 만기부담 해소를 위해서는 수익구조 정상화가 매우 중요하다." - 한국신용평가 류승협 기업·그룹평가본부 실장
"현대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은 자산 매각과 정부의 지원 두 가지다. 선박금융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구조조정을 보고 정부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지만 현대그룹이 선제적인 자산매각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잘 될 것이라고 본다." - 신한금융투자 강성부 채권분석팀장
현대그룹이 최근 자본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현대상선의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현대그룹에 대한 시장 불안감이 증폭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의 적극적인 자구 계획 이행으로 당장의 유동성 위기는 극복하겠지만 내년이 더 큰 문제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그룹은 해운업 부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현대상선의 실적이 올해 턴어라운드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킬 것이란 입장이다.
◆ 현대그룹, 웅진·STX와 다르다
현대상선의 실적 악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현대그룹 위기설이 불거지는 것은 현대상선의 지난해 부채비율이 1000%를 넘어서고 신용등급도 강등되면서 만기가 남은 회사채, 자산담보부대출(ABL)의 조기 상환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글로벌'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를 갖고 있어 현대상선의 경영 위기는 그룹 전체로 전이될 수 밖에 없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지난 2012년 말 799.1%에서 지난해 말 1396.9%로 600%포인트 가량 상승했다. 또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최근 들어 잇따라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 또는 투기등급 직전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이에 따라 신평사별로 A-에서 BBB+이던 신용등급은 BBB에서 BB+까지 떨어졌다.
현대상선이 기존에 발행한 회사채 등에는 부채비율이나 신용등급의 변동에 따라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이 때문에 회사채 투자자들이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현대상선의 공모 회사채와 기업어음(CP)는 총 8500억원 가량이지만 이 가운데 6000억원 가량이 3~5월에 만기가 도래한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현대그룹이 당장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고강도 자구계획안을 통해 상환 자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현대그룹이 지난해 발표한 자구 계획안은 ▲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 등 금융계열사 매각 ▲현대상선 등 항만터미널 사업 매각 ▲ 국내외 부동산·유가증권·선박 등 자산 매각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등을 통해 총 3조3000억원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달 사모펀드 IMM을 1조1000억원 규모의 현대상선의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사업 부문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는 등 자구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류 실장은 "올해 현대그룹은 모두 2조2000억원의 현금 유출 부담이 있는데 보유 현금과 구조조정을 통해 2조7000억원의 상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LNG전용선 매각이 차질없이 이뤄지면 순차입금이 9000억원 축소되는 효과가 있다. 현대그룹의 자구책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현재 1000%가 넘는 부채비율이 40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상선이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점도 현대그룹이 '꼬리자르기' 대신 자구계획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란 예상을 가능케하는 대목이다.
강 팀장은 "현대상선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면 모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도 거의 100% 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하는데 이 경우 파생계약 등을 통해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라며 "따라서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은 이전 웅진, STX 등이 말로만 구조조정을 시행하겠다고 했던 것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 갚을 빚이 1조1000억… 자력으로 버틸 수 있나
이제 시장의 시각은 현대그룹의 내년을 바라보고 있다. 올해 현대상선의 회사채 등 시장성 차입금 만기 도래액이 8500억원인데 반해 내년에는 1조1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2016년 이후 만기 도래액은 총 7900억원으로 내년이 진짜 고비가 되는 셈이다.
돈 되는 건 다 팔겠다고 이미 밝힌 상황에서 현대상선이 지난해와 비슷한 3000억원대의 적자를 또 낸다면 과연 현대그룹이 자력으로 버텨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근본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해운업황의 회복과 정부의 지원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업황 회복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결국은 정부의 지원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사실상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두 개 남지 않은 해운회사 중 하나를 법정관리까지 가게 하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클 것이란 전망이다.
강 팀장은 "지난주 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제3의 금융기관이 진행하는 회사채 차환심사위원회에서 1400억원에 대한 회사채를 차환해주기로 결정했는데 이번에 차환이 안됐다면 현대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할지도 모르는 중요한 분수령이었다"라며 "현대그룹이 선제적인 자산매각에 나서고 있어 전향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현대그룹은 업황 부진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현대상선의 실적이 시장의 우려보다 더 나을 것이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에프엔가이드 기준 올해 현대상선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36
현대그룹 관계자는 "해운업 부진이 장기화되는 와중에도 지난해 현대상선의 적자 규모는 전년 대비 35%나 감소했다"라며 "올해 현대상선은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업황이 부진해도 비용 절감 등을 통해 현대상선의 실적은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경닷컴 김용영 / 고득관 /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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