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그 존재만으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화려한 국제대회 수상 경력을 자랑하며 세계의 초콜릿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이브라운 정영택 대표 또한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월드 초콜릿 마스터 국가대표이자 최초의 대한민국 초콜릿 마스터이기도 합니다.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누구보다 달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정영택 대표이지만, 사실 그는 인생의 달콤함보다 쓴맛을 먼저 알았습니다. 고아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전선에 뛰어들었고, 학연, 지연, 혈연이 중요시되는 사회 풍조 때문에 설움도 많이 겪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던 한 청년이 어떻게 성공한 CEO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MBN ‘정완진의 최고다(최고 경영자의 고귀한 다섯 가지 비밀)’ 제작진이 직접 만나봤습니다.
“돌도 지나지 않아 고아가 됐어요. 저를 키워준 사람은 다름 아닌 고모였습니다. 하루 빨리 돈을 벌어 고모께 효도하고 싶었고,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과제빵 기술을 배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는데, 기술을 배운다면 남들보다 빨리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988년 그가 첫 직장으로 들어간 곳은 샤니에서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이었습니다. 당시는 고급 제과점이 막 생겨나기 시작하던 때였고, 운이 좋게 그곳에 입사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근무할 때도 그는 남다른 직원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직원은 아니었어요. 늘 배움에 목말라했고,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했죠. 선배들이 어떤 빵이나 케이크를 만들어놓으면 늘 그것을 스스로 분석하고 연구해서 색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빵을 굽는 방법을 달리해본다든가, 토핑을 달리해본다든가 하는 식이었죠. 제가 연구해서 내놓은 신제품들이 전국 매장으로 판매되기도 했고, 덕분에 입사 3년 만에 책임자 자리에도 오를 수 있었습니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정영택 대표는 그 이후 신라호텔에 입사하게 됩니다. 레스토랑 디저트 부서에서 근무하며 실력을 쌓아가던 무렵, 설탕공예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디저트의 꽃이 바로 설탕공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설탕공예는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디저트를 장식해주는 데코레이션으로도 이용돼, 음식의 격을 한 단계 높여주거든요. 그때부터 설탕공예에 푹 빠져들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찰나, 프랑스 리옹에서 열리는 월드 페스트리컵 대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축구의 최강자를 뽑는 것이 월드컵이라면, 디저트 공예에서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것이 월드 페스트리컵 대회였습니다. 그는 그 대회에 출전해, 첫 출전에서 무려 세계 8위라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정말 밤새워가며 미친 듯이 연습하고 연습하니 그런 결과가 주어지더군요. 대한민국이 입상한 건 처음이었고, 분명 괄목할 만한 성과였지만 사실 8위라는 순위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 승부욕이 발동했던 것 같아요. 이듬해 2004년에 열리는 대회에서는 기필코 1위를 하고 말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그는 이듬해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잘 다니고 있던 신라호텔에 사직서를 내는 무리수까지 감행을 합니다. 그때 그의 결정을 두고, 주변 지인들은 하나같이 반대했습니다.
“대회에 출전하는 것과 회사 생활을 병행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직장 동료들한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도 많이 발생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모두들 깜짝 놀라더군요. 설탕공예 해서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하더군요. (웃음) 사실 신라호텔은 남들이 못 들어가서 안달인 회사잖아요. 그걸 모두 포기하고, 고난과 모험의 길을 선택했으니 주변 지인들이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 성격이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이라, 결국 회사를 포기하고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렇게 정영택 대표는 2004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월드페스트리팀 챔피온십 대회에 도전했고, 마침내 설탕공예부문에서 1위를 달성하게 됩니다. 많은 것을 버리고 도전했던 것이기 때문에 감회도, 기쁨도 남달랐다는 정영택 대표.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은 가슴 벅차다고 회상을 합니다.
그는 설탕공예뿐만 아니라 월드 초콜릿 마스터즈 대회 등에 출전하면서 디저트 전반을 섭렵했고, 업계에서는 ‘정영택’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카데미 사업을 하며 후배들을 키워내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카페까지 런칭하며 사업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호텔 등에서 초콜릿이나 마카롱 등 각종 디저트 제품을 납품해달라는 수요가 많아지자, 제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찰나, 저만의 브랜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카페 사업에도 뛰어들었죠. 카페가 포화상태라고는 하지만 저는 ‘디저트’라는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있으니 승부수를 던질 만하다고 판단했고, 지금은 가맹점 10개 정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매출은 어느덧 5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아직 회사 홈페이지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지만, 그의 이러한 성과는 온전히 입소문만으로 일군 것입니다. 이렇듯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었던 청년이었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이제는 정영택이라는 이름 세 글자 앞에 아주 당연한 듯 ‘성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앞으로 저희 회사를 국
기술자에서 시작해 이제는 경영자로서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는 정영택 대표. 그의 성공 스토리는 10월 18일 토요일 오전 4시 55분 MBN ‘정완진의 최고다(최고 경영자의 고귀한 다섯 가지 비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