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3년 국내 가구당 에어컨 보급률은 9%였다. 상위 9%에 해당하는 집에만 에어컨이 있었다. 이 정도면 누가봐도 에어컨은 사치품이라 불릴만 했다.
에어컨 보급률은 2000년 29%로 높아진다. 2011년 보급률은 61%로 급격히 상승했고 2013년엔 78%까지 뛰어올랐다. 대한민국 10가구당 8가구 꼴로 에어컨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과연 현 시점에서 에어컨은 사치품인가?
현재 정부는 에어컨(월간 소비전력량 370kwh 이상 제품)에 대해 5% 개별소비세를 물리고 있다. 개별소비세는 부자들이 무분별한 소비를 못하도록 명품 등 사치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녹용·카지노·고급 유흥주점 등 사회·경제적으로 확산됐을 때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품·서비스에도 개별소비세가 붙는다. 이런 개별소비세가 에어컨에 부과되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에어컨이 사치품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의미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재정금융팀장은 “국민 80%가 소유하고 있는 제품인 에어컨에 개별소비세가 붙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시대 변화에 맞게 개별소비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매일경제와 현대경제연구원·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내수살리기 15제‘ 설문조사에서도 개별소비세 폐지 또는 대폭적인 완화 주장이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침체된 소비를 살리기 위한 개별소비세 혁신 필요성에 공감을 표한 것이다.
냉장고 개별소비세도 폐지 대상으로 지목된다. 600ℓ 이상 용량의 냉장고에 대해 5% 개별소비세가 부과되는데, 이 기준은 1977년부터 무려 38년째 유지되고 있다.
개별소비세로 거둬들이는 세금중 비중이 가장 큰 품목은 다름아닌 자동차다. 국산 승용차 개별소비세로만 1년에 무려 9100억원이 걷힌다. 전체 개별소비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로 절반에 육박한다.
국산 승용차중에서도 2000㏄ 이하로만 5300억원 이상을 걷어들인다. 아반떼·SM3 등 2000㏄ 이하 승용차들은 중산층차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과연 이런 제품들이 개별소비세 부과 대상이어야 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홍 팀장은 “지금은 대용량 냉장고와 중소형 자동차가 일반화됐는데도 불구하고 고가의 사치품으로 규정해 낡은 기준을 적용하는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동안 한국의 소득수준이 증가해 상당수 상품이 더이상 사치품이 아닌 일반 소비재로 변모했는데도 개별소비세 제도가 이같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990년 6505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지난해 2만8180달러로 무려 4.3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역시 2.4배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개별소비세가 대폭 완화되거나 상당 부분 폐지되면 적지않은 소비진작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데 공감을 표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6개월만 한시적으로 승용차 개별소비세를 폐지할 경우 단순 계산으로 6조원 이상 자동차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소득 수준 향상으로 일반화된 제품의 개별소비세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면 중산층 소비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며 “여전히 고가품으로 인식되는 제품에 대해서도 소비지표가 의미있는 상승세를 보일 때까지 한시적으로 폐지해 주거나 대폭 완화조치를 해준다면 부유층 소비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유층 소비는 내수 진작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고급모피와 귀금속, 고급사진기, 고급시계 등에 붙는 개별소비세를 한시적으로 폐지하거나 완화해 준다면 꽉 닫친 부자들 지갑을 여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보석·귀금속과 명품 가방·시계 등엔 기준가격인 200만원 초과분에 대해 20% 개별소비세가 따라 붙는다. 요즘 0.5캐럿 다이아몬드 반지가 대략 500만원선인데 200만원을 초과하는 300만원에 대해 20%, 즉 60만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귀금속 업계 한 관계자는 “개별소비세를 없애거나 부과 기준액을 10
[남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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