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전 마트에서 2600원에 샀던 양파를 이번에는 400원 더 주고 샀어요. 하루 자고 나면 몇백원씩 가격이 뛰네요. 겁나서 장 못보겠어요.”(가정주부 황영미씨)
“예전에는 한번에 20kg짜리 양파를 사서 먹었는데, 값이 워낙 올라서 이제 한 무더기씩은 못사요. 값이 잡힐 때까지 1kg 단위로 조금씩 나눠 사려고요.”(맞벌이 부부 박은홍씨(가명))
극심한 가뭄으로 양파, 배추 등 채소가격이 치솟자 주부들 장바구니도 바짝 가물었다. 식탁 물가의 ‘반란’에 가정 주부사이에서는 아껴사고, 나눠사고, 바꿔사고, 다시 아끼는 새로운 ‘아·나·바·다’ 풍조가 자리잡고 있다.
19일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가뭄 영향에 양파 1kg 도매값은 18일 기준 850원으로 전년 대비 76% 치솟았다. 최근 3년간 평년 가격(689원)과 비교해도 23% 이상 급등한 수치다. 지난해에 비해 파는 109%, 배추는 67%, 마늘은 42%, 건고추는 24% 급등했다. 때이른 더위에 생육이 부진했던 수박은 18%가 올랐다.
18일 오후 서울역 인근 한 대형마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쇼핑객들이 부쩍 줄어든 가운데 과일·야채코너는 유독 더 썰렁했다. 채소코너에서 파를 들었다놨다 하던 주부 김주영씨(45)는 “같은 값에 양이 준 것을 피부로 느낀다”며 “아무래도 채소는 마트에서 사지 말고 전통시장으로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경기 평촌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이민영씨는 “채소 가격이 전반적으로 너무 많이 올랐다”며 “생채소 대신 차라리 주스나 통조림을 사려고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채소를 많이 쓰는 식당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특히 요리에 70~80% 이상 양파를 쓰는 중식당 타격이 크다. 서울 마포구 한 중식당 매니저는 “가뜩이나 양파 가격이 많이 올라서 고민이 많은데, 사정 모르고 밑반찬으로 나온 양파 한 접시 더 달라고 하는 손님들이 제일 얄밉다”고 토로했다.
체감 물가와 소비자 물가간 차이가 커지면서 정부 통계치에 대한 불신감도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소비자물가는 6개월째 0%대에 머물며 장바구니 물가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서울 한 시장에서 만난 박미연씨(52·가명)는 “확실히 장 한번 보면 예전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며 “물가가 0%대라니 무슨 말이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정주부 김정인씨(40)는 “남편 월급은 고만고만한데 매달 생활비는 불어나 지갑열기 겁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같은 괴리감이 커진 것은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방식 때문이다. 통계청은 물가 산출 근거가 되는 481개 품목 중 20개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둬 지수를 산정하는데, 이 품목이 전월세, 스마트폰 이용료, 휘발유값, 도시가스 등 대부분 주택·교통비에 집중됐다. 물가 가중치 상위 20개 품목 가운데 장바구니 물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팀장은 “통계청이 생활상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2~3년마다 가중치를 조정하지만 따라잡을 수 없는 변화가 있으면 소비자물가와 현실과 괴리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문재용 기자 / 박윤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