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현들의 숭고한 삶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정신적 바탕을 재정립하기 위해 이 용역을 실시한다’
부산시가 ‘2014년 부산지역 사우 전수조사 학술용역’을 발주하면서 밝힌 용역 목적이다. 사우(祠宇)는 향교와 서원, 사당 등 선조의 영정을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자 교육기관을 말한다. 부산시는 이 용역에 1500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 용역 결과는 별로 활용되지 않았다. 부산의 경우 동래향교와 기장향교 등이 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사우가 많은 편이 아니어서 부산지역 사우 전수조사 학술용역의 과연 필요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부산시의 학술용역 목적인 자료집도 발간되지 않았다.
부산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15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용역보고서만 발간됐고 외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집은 발간되지 않았다”며 “무슨 목적으로 용역을 했고 앞으로 활용할 방법도 없는데 왜 비용을 들여가면서 용역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용역을 남발하고 있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들은 해마다 2000억원이 넘는 혈세를 들여 수천 건의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 정책에 반영됐거나 법령 제·개정에 활용된 비율은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용역을 남발하는 정부의 업무 행태가 심각한 예산 낭비를 부른다는 지적이다.
8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13년 46개 정부 부처가 수행한 정책연구용역은 1924건으로 총 1136억900만원을 사용했다. 용역 한 건당 5900만원 꼴이다.
이 중 법령 제·개정에 반영된 용역은 149건, 제도개선 및 정책에 반영된 용역은 994건으로 전체 1777건(과제가 끝나지 않은 115건, 종료 후 6개월 미만인 32건 제외)의 64% 수준이다. 나머지 634건 중 589건은 정책에 ‘참조’만 했을 뿐이고 45건은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연구용역비로 1741억6800만원을 쓴 2011년과 1364억3800만원을 집행한 2012년엔 법령 제·개정과 제도개선 및 정책에 반영되는 비율이 각각 50.9%, 53.3%에 불과했다.
문제는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정부가 공무원들이 직접 할 수도 있는 업무까지 ‘혈세’를 주고 대학이나 연구원 등에 외부 용역을 맡긴다는 점이다.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정부 각 부처에서 자신들이 추진할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연구원에 용역 주는 일이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부산시는 지역행복생활권 계획을 수립한다며 4500만원을 짜리 보고서를 의뢰했고, 전남 화순군은 지역 경관계획을 세우겠다며 목포대학에 1억5900만원을 용역비로 지급했다. 경상북도는 도시가스 공급비용을 산정한다며 한 회계법인에 2
최병대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까지 외부 용역을 통해 해결하는 버릇이 들면서 관료들이 역량을 기르지 못하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교수는 이때문에 한국은 용역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올정도라고 덧붙였다.
[박동민 기자 / 박윤수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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