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5일 찾아간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은 활기에 넘쳤다. 하루 24시간, 일년 350일 이상 가동하는 금산공장은 매일 6만4000개, 1년간 2266만개의 타이어를 만들어내는 세계 최대 규모 타이어 공장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공장 한 켠에서는 타이어에 사용되는 각종 고무재료를 재단해 이어 붙이는 공정이 진행중이었고, 다른 한 켠에서는 재단된 재료를 형틀에 끼워 둥그런 타이어 형상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라인 중간중간 위치한 근로자들은 제각각 기계를 조작하고 공정을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공장에서 만난 권 모씨(44)는 “지난주 임금협상이 타결된 이후 공장 분위기가 아주 좋다”며 “협상 내용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노조 설립이래 지켜온 53년 무분규 전통을 깨지않고 협상을 마무리했다는 사실에는 모두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2 같은날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정문은 버스 9대로 가로막혀 있었다. 버스 앞에는 사측에서 내건 ‘사원 여러분 용기 있는 선택이 절실합니다’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이에 맞서 노조 측이 내건 플래카드도 회사 주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직장폐쇄· 임금피크제 철회,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지난 6일 사측이 노조 전면파업에 맞서 직장폐쇄 조치를 단행하면서 공장 주변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파업 34일째인 이날 공장 주변은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공장 내부도 휑했다. 평소 수천명이 일하던 1,2,3공장 내부에 400명의 근로자만 남아 타이어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들은 현장 관리자와 운반을 담당하던 직원들로, 공장 가동률은 22%에 불과했다. 대규모 납품처 등 꼭 조달해야 할 제품만 생산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노조와 회사간 ‘신뢰도’의 차이가 국내 1, 2위 타이어 업체인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의 운명을 갈라놓고 있다.
한국타이어 노조는 지난 1962년 설립된 이후 올해까지 53년동안 단 한 차례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금산공장에서 만난 직원들은 회사가 한 번도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기에 신뢰관계 형성이 가능했다고 입을 모았다.
일례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타이어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자 회사는 한 달간 공장을 세우는 ‘휴업’을 결정했다. 노조는 이 기간 자발적으로 연월차를 사용하면서 회사 방침에 동참했고, 회사는 법정 휴업수당을 제공하고 노조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직원들을 배려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무급휴직 제도를 활용해가며 직원은 단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았다.
금산공장 조합원 김모씨(52)는 “입사이후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회사가 사람을 내보낸 적이 없다”며 “직장을 잃을 지 모른다는 걱정이 없다보니 당장 올해 월급을 좀 더 많이 받는 것 보다는 5년뒤, 10년뒤의 일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사상생 문화 덕분에 자칫 파업으로 치닫을 수 있었던 올해 임금협상 과정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임금 인상폭과 월차휴가를 없애는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노사는 서로 일정 부분을 양보하면서 극적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금호타이어는 정반대다. 5년간의 워크아웃과 노사대립을 거치면서 노사간 신뢰가 사라졌다. 금호타이어 노조의 ‘파업 관행’은 예전부터 악명이 높았다. 지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파업을 하지 않은 해는 딱 3년 뿐이다. 반면 지난 13년 동안 파업일수는 이날까지 201일(부분파업 131일, 전면파업 70일)이나 된다. 사측도 이에 맞서 직장폐쇄를 수시로 단행했다. 각각 47일과 34일 동안 파업을 벌였던 지난 2009년과 2011년에도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광주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노조는 워크아웃과 구조조정을 거치며 ‘언제 회사를 나가게 될지 모르니 당장 이익을 최대한 챙겨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회사는 ‘노조는 만족을 모르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며 “서로를 믿지 못하니 임금협상에서도 충돌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노조는 파업을 통해 높은 임금과 복지를 챙겨왔다”며 “파업을 막는데 급급해 노조측 요구를 모두 들어준 사측도 되풀이되는 파업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사 문화의 차이는 당연히 경쟁력 격차로 이어졌다. 금호타이어 매출 규모는 한때 전세계 타이어업체 중 9위까지 올랐으나 현재 11위에 그치고 있다. 10위
[광주 = 박진주 기자 / 금산 =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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