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남자 후배에게 연애상담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여자로 하여금 사랑받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그럼, 남자 후배는 ‘어떻게?’라고 되묻는다. 그럼, 나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일단, 네가 하고 싶은 얘기보다는 그녀가 듣고 싶은 얘기를 먼저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두 얘기의 공통분모에서부터 실타래를 풀어보라고 말이다.
만약 이제 막 광고를 시작한 후배 광고인이 내게 어떻게 하면 좋은 기업PR을 만들 수 있냐고 물어온다면 난 똑같은 대답을 할지도 모르겠다. 기업이 하고 싶은 얘기보다는 타겟이 듣고 싶은 얘기를 먼저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그 두 얘기의 공통분모에서 시작해보라고 말이다.
대부분의 기업PR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프러포즈’이자,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러브레터’이며, 관계를 진척시키고자 하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프러포즈를 하는 쪽은 기업 쪽일 것이고 받는 쪽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다. 그런데 이 프러포즈를 잘난 척으로 시작해서 있는 척으로 끝내는 기업이 안타깝게도 참 많다 (물론, 프러포즈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제작된 기업PR이라면 얘기는 다르겠지만). 실제로, 광고주를 포함한 수많은 광고인들이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 중에서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 자랑하고 싶은 팩트를 만지작 거린다. 널리 알리고 싶은 업적을 들춰본다. 괜찮다. 어떤 광고주는 결국, 자랑거리 하나, 업적 하나를 주기도 한다. 여기까지도 괜찮다. 그런데, 이것을 대중이 듣고 싶은 게 뭔지는 고려하지도 않은 채, 그저 예쁘게, 멋있게, 감각적으로 찍어 우리 기업 괜찮지 않냐며 프러포즈한다. 이건 괜찮지 않다. 2015년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남 잘난 얘기 듣기에는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탓이다.
최근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SK하이닉스 기업PR을 예를 들어 얘기를 해보겠다.
2012년 하이닉스에서 SK하이닉스로 출범한 이 회사는 사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표적인 B2B기업 중 하나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보면, 자랑거리가 한 두 개가 아닌 회사다. 매출의 대부분을 수출하는 것은 물론, 세계 2위의 메모리반도체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TV-CM에 그런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다. 카피 전문을 옮겨 본다. ‘안에서 답을 찾았는데/ 밖에서 문제를 못 풀 리 없고/ 안이 단단하다면/ 밖이 흔들릴 리 없고/ 안이 새로워졌는데/ 밖이 그대로일 리 없다/ 세상의 모든 새로움은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안에서 밖을 만들다’
요즘 대한민국의 청년을 두고 3포세대를 넘어 N포세대라고 한다. 50대 사이에서는 기/승/전/치킨집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들었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결국 은퇴하고 나면, 자영업이라는 개미지옥으로 인생이 끝나고야 만다는 자조 섞인 말이다. 이제, 희망고문 시대는 지나고, 바야흐로 희망부재 시대에 돌입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바깥세상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질 대로 낮아져있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힐링’이라는 단어가 풍미했던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밖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질수록 안을 기웃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은 행복에 집중하게 된다. 근래, 캠핑이 유행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최근 디저트산업이 주목을 받는 이유이고, 먹방과 각종 레시피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젠 내면적인 만족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 대중에게 SK하이닉스 기업PR은 ‘안’의 중요성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를 건다. 마치, 당신의 얘기를 하듯이,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은 이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이 듣고 싶은 얘기 중에서 기업이 하고 싶은 얘기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PR은 영어로 ‘대중과 관계 맺기(Public Relations)’라는 뜻이다. 모양새야 많이 달라졌다지만, 수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기업PR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마케팅 활동을 펼친다. 그리고 자의반타의반, 어떤 형태로든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건 바로, 그 본질은 관계 맺기에 있다는 것이다. 또 보다 효과적으로
[SK플래닛 광고부문 류시영 CD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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