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램리서치는 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 물류단지 내 3만㎡ 부지(M블록)에 물류창고를 지으려고 실사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결국 포기하고 지난 8월 대만 까오슝으로 방향을 틀었다. 연매출만 87억달러로 아시아 시장 확대를 노리던 램리서치가 국내 창고 설치를 포기한 까닭은 물류창고에 국내 물품을 반입할 경우 영세율을 적용받는국내업체들과는 달리 외국회사란 이유만으로 부가세를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사실을 뻔히 알고도 당했다는 점이다. 규제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식한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해 12월 국회에 ‘자유무역지역지정법’ 개정안을 상정했지만 벌써 1년 가까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임병기 인천국제공항공사 복합도시사업처장은 12일 “램리서치가 인천국제공항의 우수한 통관시스템이나 국내 업체들과의 네트워크 등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했으나 부가세 영세율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결국 대만으로 방향을 돌렸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이나 중국 푸동 등의 동아시아권 경쟁자들은 통관시스템에선 아직 인천에 못 미치지만 값싼 노동력이나 규모 등의 장점을 대세워 물량을 늘려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1일 찾은 인천공항 물류단지는 전체가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된 탓에 출입소를 거쳐야 진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물류단지 군데군데 공터가 보였다. 2005년 부지 개발이 마무리된 1단계 구역의 경우 입주율이 93.4%에 달한다. 2단계 구역의 경우 글로벌 반도체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 등 일부 업체는 이미 공사에 들어갔지만 입주업체를 찾지 못해 빈 곳으로 남은 곳이 많다. 글로벌 물류경쟁이 격화된 탓이다.
지난 8월 기준 인천국제공항 화물 운송 실적은 약 163만톤. 지난해는 2위였지만 벌써 한 단계 밀려 3위로 떨어졌다. 홍콩 첵랍콕 공항이 282만톤으로 부동의 1위를 기록한 가운데 최근 글로벌 물류허브로 급부상중인 두바이에 밀린 결과다.
중국도 치고 올라오고 있다. 상하이 푸동공항 물동량은 올해 154만톤으로 인천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순위가 뒤집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시아 국가들의 글로벌 물류허브 경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규제개혁의 속도는 한없이 더디다. 지난해 12월 발의된 ‘자유무역지역법’ 개정안은 벌써 1년째 국회에서 단 한차례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내버려진 상황이다.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이제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개정안을 논의할 계획이지만 현재 법안 통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물류단지 관계자는 “램리서치 뿐만 아니라 미국 반도체 기업 A사, 일본 반도체 기업 C사 등이 인천공항에 글로벌 배송센터 설립을 계획하고 있으나 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현재 계획을 보류중”이라며 “개정이 계속 미뤄질 경우 이들 업체들도 언제 대만이나 중국으로 방향을 돌릴지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배송센터 1곳을 물류단지에 유치할 경우 연간 물동량은 최대 200톤이 늘어나며 매출은 360억원까지 증가한다.
임 처장은 “항공물류는 전체 교역량의 0.3%에 불과하지만 IT기기,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제품들이 주로 배송되기 때문에 교역가치 비중은 25%에 달한다”며 “우리나라 전체 교역흑자의 55%가 항공물류를 통해 발생할 정도로 중요한데 법 개정이 느려 아시아 물류허브를 선점 경쟁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규제 개혁의 효과는 피부로 확실히 느껴진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스태츠칩팩코리아의 경우 지난 6월 물류단지 용도가 자연녹지에서 공업지역으로 변경되자 즉각 단지
인천국제공항측은 “물류 단지내에 현재 26개 업체가 입주했지만 규제개혁에 속도가 붙으면 현재 미분양으로 남아있는 토지들도 업체들의 사업의향서 제출이 크게 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 영종도 = 장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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