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협상은 시간을 버는 수단일 뿐 그리스 경제위기의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나쁜 관행들을 뿌리뽑기 위한 과감한 개혁이 필요합니다“(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기업은 투자를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외국자본유치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져야 합니다”(니코스 베타스 그리스경제산업연구소 IOBE 소장)
지난 4일 그리스 아테네 남단에 대리석으로 지어진 3층 건물, 에우게니데스 재단에는 ‘Korean-Hellenic Partnership Plaza’ 현수막이 내걸리고 그리스와 한국의 경제계, 외교계 인사들이 대거 모여 그리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토론의 장을 열었다.
300명의 청중이 몰린 강연장에는 예정에 없던 그리스 증권 거래소, 그리스 공공자산 매각을 담당하는 그리스 정부 재산 개발 펀드(HRADF) 담당자도 연사로 참여해 ‘그리스 주식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와 ‘공공자산 민영화 계획’을 소개하는 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각 단체들의 뜨거운 관심이 이어졌다. 한국 발표자의 파워포인트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그리스의 젊은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바로 전날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공무원 노조 등의 총파업이 있었지만 그리스에서도 경제개혁의 절박함에 공감하는 국민들의 관심이 한 데 모인 셈이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의 지하경제 양성화(세수확보), 재벌 구조조정 사례 등이 그리스의 만성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사점으로 제시됐다.
조동철 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도덕적 해이가 심화된 ‘대마불사’ 신화를 타파하는 것부터 금융위기 극복이 시작됐다고 소개하고 세금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걷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세금혜택으로 신용카드 사용률을 높여 지하경제를 양성화한 것이 대표 사례다.
한국의 신용카드 사례는 현지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행사가 열린 4일자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즈’ 1면과 16면에 각각 ‘현금 대신 카드를 쓰는 그리스인들이 지하경제를 줄인다’(Greek shift from cash to plastic may undercut shadow economy), ‘그리스인의 카드사용에서 희망을 찾는 경제학자들’(Economists find hope in reluctant shift to plastic)라는 제목으로 연결기사가 실린 것.
그리스는 관광업을 주 산업으로 하다보니 세금을 내지 않는 현금거래가 일상화돼 있다. 대외, 대내 수지가 모두 적자인 그리스가 정부 재정수입을 늘리기 위한 노력에 그리스 정부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관심이 쏠린 셈이다. 기사에는 니코스 베타스 IOBE 소장이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신용카드 사용 촉진 정책을 지하경제를 양성화한 대표적 사례로 분석한 리포트 내용이 인용됐다.
조동철 수석이코노미스트에 이어서 고동수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당시 LG반도체, 대우, 두산 등의 구조조정 사례를 비교분석했다.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기업 구조조정이 비효율성과 부실요소를 줄여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이번 행사는 금융위기 극복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그리스의 대표 경제연구기관 IOBE의 초청으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IOBE가 공동주관을 맡았다. 정식명칭은 ‘한-그리스 파트너쉽 포럼’이다. 행사에는 타키스 아사나소풀로스 IOBE이사장, 김두영 코트라 유럽지역본부장, 디미트리오스 마르다스 그리스 외무차관, 안영집 그리스 주재 한국대사도 참
양은영 코트라 구미팀장은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 사례가 유럽권 국가에 초청돼 강의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리스 언론에 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 이날 행사가 향후 정치, 경제, 외교 교류의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테네(그리스)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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