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도로 등 아시아 인프라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중국과 일본의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인도네시아 고속철 사업에서 중국에 허를 찔리며 사업권을 빼앗겼던 일본이 이번엔 인도시장에서 반격에 나섰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인도 뭄바이~아마다바드를 잇는 총연장 505km 구간의 고속철 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오는 11일 인도를 방문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신칸센 수주를 확정할 예정이다. 인도 고속철 사업 수주를 위해 일본 정부는 1조엔(9조5000억원)에 달하는 엔 차관을 당근으로 제시했다. 전체 사업비 1조8000억엔(17조원)의 절반이 넘는 돈을 차관으로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 인도 정부를 설득하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다. 일본 정부가 예상을 웃도는 돈을 쏟아부은 것은 불과 몇 달 전 인도네시아에서 겪은 뼈아픈 기억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을 잇는 150km 고속철 사업 수주전에서 일본은 중국의 막대한 금융지원에 밀려 수년간 공들여왔던 사업권을 빼앗겼다.
일본이 인도에서 반격에 성공하면서 아시아 인프라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인 철도 사업에서 중국과 일본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게 됐다. 이미 태국 방콕~치앙마이를 잇는 670km 구간 고속철은 일본이, 북부 농카이에서 방콕을 거쳐 맘타풋까지 이어지는 867km 고속철은 중국이 사업권을 가져가면서 팽팽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포르를 잇는 350km 고속철 사업에서도 사활을 건 수주전을 진행중이다.
중일은 철도 뿐 아니라 산업단지와 도로, 발전 등 인프라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주하겠다는 태세다. 일본은 한국이 진작부터 교섭을 벌여왔던 베트남 원전사업에 중간에 뛰어들어 가로채는데 성공했고, 미얀마 최대 산업단지인 띨라와 단지 공동개발에 나서면서 산업인프라 장악에도 나섰다. 이에 뒤질세라 중국은 파키스탄과의 철도 협력에 이어 최근 문호를 연 이란의 도로, 전력 등의 사업 수주를 위해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수주전은 말 그대로 ‘쩐의 전쟁’이다. 한국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자금지원이 수주전의 최대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인프라를 장악하면 해당 국가의 경제권을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계산이 숨어있다. 중국은 해외 인프라 수주에 들어가는 자금을 실크로드기금과 수출입은행 등을 통한 정책자금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 가동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대출 프로젝트도 중국업체들이 우선적으로 혜택을 볼 전망이다. 실크로드기금은 400억달러(47조원)로 조성돼있고, 수출입은행이 해외 철도사업 수주에 지원키로 한 정책자금은 무려 5000억위안(90조원)에 달한다. 지난 9월 수주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철도와 지난달 수주한 아르헨티나 원전 사업비의 80~90%를 차관형태로 제공한 것은 이런 자금력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최대주주로 일찌감치 아시아 인프라 투자를 해왔던 일본 정부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아베 정부는 향후 5년 동안 아시아인프라에 1100억달러(13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일본은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에 4조7000억엔(45조원), 인도에 4조4000억엔(42조원) 규모의 엔차관을 공여했을 만큼 탄탄한 기반을 구축해왔다.
여기에 중일 양국 정상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시아 각국 정상을 만나 인프라 투자와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올들어 42일간 해외순방을 할 정도로 활발한 대외행보를 이어간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사업과 인프라 세일즈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중국과 접하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국가들과의 도로, 철도 연결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리커창 총리도 동남아와 중앙아 국가들을 상대로 고속철 세일즈에 팔을 걷어붙였다. 외국 정상과 회담할때 단골 의제중 하나가 고속철이다. 지난달 25일에는 중국-동유럽국가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 16명과 함께 고속철에 동승해 쑤저우에서 상하이까지 91㎞를 20여분간 이동하며 고속철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아베 총리도 올해 아세안 국가 정상 대부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서울 = 문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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