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사장단은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삼성전자 서초사옥 39층으로 향한다. 사장단 40여명이 정기적으로 모여 공부하는 ‘수요사장단회의’가 열리는 곳이다.
이 회의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이 명사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마다 골프라운딩을 즐겼던 ‘수요회’를 모체로 하고 있다. 선대회장 사후 이후 유명무실해진 수요회는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이건희 삼성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사장단협의회’가 생기고, 이후 2010년 이 회장의 경영복귀와 함께 ‘수요사장단회의’로 문패를 바꿔 달면서 현재와 같은 공부 모임이 됐다.
수요사장단회의는 여름 휴가철 2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취소되는 일이 없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도 지난주까지 총 46번의 강연이 이뤄졌으며, 앞으로 두 번 더 강연을 진행해 23일에 ‘종강’을 할 예정이다.
회의는 오전 8시에 시작돼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된다. 연사가 1시간 정도 발표하고 이후 30분간 질의응답과 토의가 이어지는 방식이다. 초청 연사는 대학 교수가 70%를 넘어설 정도로 압도적이지만 의외의 인물이 연사로 등장하기도 한다.
올해는 ‘식객’ ‘꼴’ 등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허영만 화백과 조훈현 프로바둑기사,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등이 초청돼 자신의 인생사를 곁들인 철학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서커스의 현대화를 이뤄낸 ‘태양의 서커스’ 질 생크로와 수석부사장도 창의성을 주제로 5월에 강연을 했다.
강연주제는 인문과 경제·경영, 신사업에 대한 내용이 대략 3분의 1 씩을 차지한다. 강연주제 선정을 그룹 미래전략실의 전략1팀이 맡고 있어, 주제 자체가 삼성그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올해 삼성 사장단들이 가장 많이 배운 주제로는 바이오와 로봇이 꼽힌다. 바이오는 지난 3월 송기원 연세대 생명과학과 교수를 초청해 ‘생명과학과 인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들은 데 이어 4월에는 ‘뇌 과학자’로 유명한 김대식 KAIST 교수가 ‘뇌 과학과 인공지능의 기회와 리스크’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송 교수와 같은 곳에서 연구하는 권영근 연세대 교수를 초청해 ‘바이오 산업 전망과 미래 비전’이라는 주제의 초청강연을 가졌다. 권 교수는 생화학자로 혈관형성과 혈관질환 등을 주로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대형 의약품 특허 만료로 바이오 붐이 조성되고 있다”며 “세계 의약품시장 규모가 매년 5%씩 성장해 오는 2020년에는 1조40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오는 IT, 금융과 함께 삼성의 미래 3대 핵심 성장축 가운데 하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 가운데 하나로도 꼽힌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삼성그룹 내부에서 로봇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로봇과 관련된 강연도 두 차례나 있었다. 한국인으로는 손꼽히는 로봇전문가인 데니스 홍 UCLA 교수가 ‘로봇, 인류의 행복과 동행하나’를 주제로 지난 7월에 강연을 가진 데 이어, 한달 뒤에는 오준호 KAIST 교수가 ‘휴머노이드 로봇과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펼친 것이다.
인간처럼 두 개의 팔과 다리를 가진 사람 형태의 로봇 ‘휴보’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 교수는 “로봇은 공학기술이라기보다 기초과학에 가깝다”며 “앞으로 국력은 그 나라가 만들어내는 로봇 수준에 비례하고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를 전달했다.
삼성 사장단들은 신사업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최근 유행하는 트렌드에 대한 강연도 많이 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부작용이 문제가 되던 지난 4월에는 ‘SNS의 열 가지 얼굴’이라는 주제로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얘기를 경청했고, 중동지역 문제가 해법을 찾기 어렵게
연초에는 국내외 경제전망과 북한을 주제로 한 거시적인 흐름의 강연이 이어지다 연말로 갈수록 삼성이 고민하는 신사업과 관련된 주제가 늘어나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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