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권을 연장하지 못해 상반기 문을 닫아야 하는 워커힐 면세점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재고를 인수해줄 기업을 찾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SK네트웍스는 재고 처리를 위해 두산·신세계 등 신규 면세 사업권을 획득한 기업들과 협상을 하고 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네트웍스의 보세 창고와 운영 시스템을 인수하려고 막판 조율중인 두산도 워커힐면세점의 재고에 대해서는 ‘협상대상이 아니다’라며 못을 박았다. 두산 관계자는 “워커힐면세점의 폐점 시점과 두산 면세점 오픈 시점이 맞지 않기 때문에 유행이 지난 상품들을 받기가 애매하다”며 “설사 받는다고 하더라도 브랜드와의 협의등 복잡한 문제가 있어 (재고 인수건은) 해당사항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세계와도 재고인수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지만 신세계 측이 부정적이라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말 가오픈한 한화 갤러리아 면세점 측에도 재고 인수를 제안했지만 입점 브랜드와의 연관성 등의 이유로 협상이 결렬됐다.
워커힐 면세점의 재고는 약 600억원~700억원 대로 추정된다. 1992년부터 23년간 영업을 해 온 워커힐면세점은 사업기간 연장 신청을 하지 않는다면 내달 15일에 완전히 문을 닫게 된다. 1개월씩 총 3번 연장을 신청할 수 있어 5월까지는 영업이 가능하지만 이 기간 역시 모든 재고를 해소할 수 있을만큼 여유있는 기간은 아니다. 떨이세일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재고를 소진한다고 해도 인수대상을 찾지 못하면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특히 워커힐 면세점에서 판매하던 시계같은 경우는 지난해 초 리뉴얼을 하면서 새로 들여왔기 때문에 ‘묵힌 재고’라고 보기 어렵다”며 “명품 브랜드의 고급 시계나 쥬얼리 등은 유행을 타지 않아 인수해서 판매해도 무리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행을 타는 의류같은 경우에는 그렇다치더라도 재고라고 보기에 어려운 명품 시계, 주얼리까지 신규 면세점들이 ‘유행’ 등을 핑계로 인수를 꺼리는 속내는 따로 있다. 아직 ‘명품모시기’ 전쟁이 치열한 와중에 입점이 되지않은 브랜드 제품을 워커힐 면세점에서 들여와 팔다가 자칫하면 이들 브랜드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사실 브랜드가 입점되기 전이라도 워커힐의 재고를 받으면 편집숍 같은 임시매장등에서 제품들을 진열해 팔 수 있다”며 “하지만 아직 각 브랜드들과 입점협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통로로 물건부터 가져다 팔면 브랜드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쾌해 할 수 밖에 없다”고 귀뜸했다.
워커힐면세점에는 브레게·피아제·예거 르쿨트르·롤렉스 등 최고급 시계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내년 5~6월 개점을 앞둔 신규 면세점들의 경우 이들 브랜드와 현재 입점 협의를 진행중이거나, 입점 제안을 막 시작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때문에 사업을 포기해야하는 워커힐 면세점의 재고를 일종의 ‘선의’로라도 받으려고 했던 당초 신규면세점들이
또 다른 면세점 관계자는 “일반 유통업체들은 아울렛 등 악성 재고를 처분할 수 있는 통로가 있지만, 면세품은 외부 반출도 되지 않기 때문에 피해가 크다”고 토로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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