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편집을 활용하면 이론적으로 선천성 장애나 유전에 의한 질병은 100% 예방이 가능하다. 기형이나 유전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미리 잘라내면 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완성단계에 와 있다. 안전성과 정확성을 갖춘 유전자 가위가 지속적으로 개발되면서 원하는대로 인간의 DNA를 편집할 수가 있다. 동물 시험을 통해서 입증이 됐다.
문제는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할 수 있느냐, 한다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 활용 가치가 높기 때문에 영원히 봉인해 놓을 수는 없다. 단계적으로 허용범위를 넓혀갈 수 밖에 없다. ‘유전자 골드러시’가 진행되는 이유도 봉인해제의 시점이 다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스위스 거대 제약사인 노바티스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 벤처기업인 인텔리아 세라퓨틱스, 카리부 바이오사이언스와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의약품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에 착수했다. 투입자금은 약 170억원. 노바티스는 면역세포와 혈액 줄기세포에 대한 유전자 가위기술로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바티스의 발표 일주일 뒤, 또 다른 거대 제약사인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웰컴 트러스트 생어 연구소, 이노베이티브 게노믹 이니셔티브, 브로드앤화이트헤드 연구소, 서모 피셔 사이언티픽 등 영국, 미국의 연구소 4곳과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면역치료 바이오벤처 주노 테라퓨틱스는 유전자 편집 스타트업인 에디타스와 함께 항암 면역세포 치료제 개발에 나선다. 미국 제약사인 리제네론도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ERG 게노믹스와 특허계약을 체결했다. 세계적인 화학회사 미국 듀폰은 식물 육종과 농업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기 위해 카리부 바이오사이언스와 공동연구 협약을 맺었다. 독일 제약사 바이엘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갖고 있는 스위스의 바이오벤처 크리스퍼 세라퓨틱스와 지난해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향후 5년간 38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전 세계 제약사 및 바이오 업계가 과감한 투자가 본격화하고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명체의 기본이 되는 유전자(DNA)를 정교하게 떼어내거나 붙일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1세대로 불리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미 1980년대 개발됐지만 2013년 ‘크리스퍼’로 불리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혁명적 진보가 이뤄지고 있다. 생명공학 지식이 있는 과학자라면 누구나 간편하게 DNA를 떼거나 붙일 수 있는 만큼 활용도가 넓어졌을 뿐 아니라 그동안 불가능했던 정교한 유전자 편집이 가능해졌다. 올해 초 첫 발행된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는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의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는 논문이 게재했다. 학계에서는 이미 유전자 가위 기술이 임상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정확도와 안전성 면에서 성숙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생명체의 기본이 되는 유전자(DNA)를 편집해 농작물 생산량 증대, 질병 치료 등에 활용하겠다는 인간의 원대한 꿈이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전자를 변화시켜 동·식물을 유용하게 활용하려는 시도는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물을 접합시키는 ‘육종’이 대표적인 기술이다. 1953년 DNA 구조가 밝혀지고 난 뒤 과학자들은 유전자를 재조합시킨 GM작물을 개발해왔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종을 결합시킨 작물이 생태계와 인체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다. 김상규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위원은 “DNA에 변화를 일으키는 기초적인 기술은 식물에 방사선을 쪼여주거나 화학약품을 처리하는 수준”이라며 “다만 이런 육종 변화는 DNA 변화를 정교하게 이끌어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간편하게 유전자를 자르거나 대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유전자 편집은 신약개발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혈우병, 겸상적혈구증 등 유전질환은 1만여개가 넘는다. 대부분 완치 불가능할 뿐 아니라 대를 이어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과학자들은 유전질환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기서 찾고 있다.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혈우병과 에이즈 치료제 개발도 임상을 앞두고 있다.
유전자 편집 시장의 잠재적 가치 때문에 기술 소유권을 둘러싼 특허전쟁도 시작됐다. 지난해 4월, UC버클리 연구진은 미국 특허청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을 대상으로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UC버클리는 이미 2013년 3월,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특허를 미국 특허청에 출원했다. 여기에 김진수 단장이 공동 창업한 바이오벤처 툴젠도 특허를 출원하면서 소송전에 가세했다.
이번 소송전은 MIT 연구진이 특허청의 ‘특별 리뷰 프로그램’을 통해 2014년 4월, 가장 먼저 특허 등록에 성공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특별 리뷰 프로그램이란 과학과 관련된 특허를 빠르게 승인하는 제도이다. 아티 라이 미국 듀크대 법대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특허권리를 나누는데 합의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전자 가위와 관련된 특허소송은 격렬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소송전에 참여할 정도로 국내의 유전자 가위기술도 세계적 수준에 올라와 있다. 툴젠은 국내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업체다. 중국 연변과학기술대와 제휴를 맺고 근육량을 20% 늘린 ‘근육강화돼지’를 개발했고 이탈리아 연구기관과 제휴해 곰팡이균에 견딜 수 있는 포도 종자를 연구개발 중이다. 혈우병 치료제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2014년 설립된 지플러스생명과학은 상추, 브로콜리 등 종자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다. 향후 소두증 등 증상을 동반하는 스미스-렘리-오피츠 증후군(SLOS)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김진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이끄는 연구진은 질병이나 스트레스에 강한 외부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도 외부 환경 변화에 강한 상추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김 단
[원호섭 기자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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