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한 대형 약품유통업체가 경찰병원에 기초수액제를 원래 가격보다 35% 낮은 가격에 공급을 시작했다. 지난해말 실시한 2016년 연간소요의약품 입찰에 따른 결과다.
기초수액제를 생산하는 제약사는 처음에는 ‘덤핑 공급’에 대해 난색을 표명했으나 약품유통업체와 유지해온 거래 관계 때문에 공급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또 유통업체가 저가에 낙찰받았어도 제약사가 공급을 거부하면 공정거래법 위반이 된다. 제약사로서는 울며겨자먹기로 공급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문제는 경찰병원에 납품하기로 한 기초수액제가 ‘퇴장방지의약품’이라는 점이다. 퇴장방지의약품은 기본적으로 가격이 낮고 수익성이 없어서 제약사들이 생산을 기피하는 약품이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정부가 가격을 지정해서 생산을 계속하도록 강제하는 의약품을 의미한다.
정부가 지정해주는 가격은 ‘수익’ 기준이 아니라 ‘생산원가’ 기준이다. 따라서 이 가격 이하로 팔면 제약사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경찰병원 의약품 입찰이 올해 실시되는 국공립병원 입찰 중 첫번째로 실시한 입찰이기 때문에 퇴장방지의약품을 생산하는 제약사들은 긴장을 하고 있다. 다른 국공립병원들도 경찰병원이 공급받는 가격을 기준으로 의약품 입찰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다른 국공립병원들이 경찰병원에는 35% 덤핑 가격으로 공급하고 우리한테는 왜 그 가격으로 안해주냐고 하면 그 가격으로 공급할 수 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정부 공공 조달 기본 제도인 최저낙찰제와 퇴장방지의약품 관리제도가 양립이 어렵기 때문이다.
퇴장방지의약품 관리제도는 환자의 진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이 계속 공급돼 환자의 진료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무분별한 고가약제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정부는 현재 802개 의약품을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사용장려비용을 지급하거나 생산원가를 보전하도록 특별관리대상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지만 최저낙찰제 앞에서는 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정부가 지정해준 가격이 최저낙찰제에서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장방지의약품 입찰마저 최저낙찰제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퇴장방지의약품을 지정한 보건복지부의 직무유기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퇴장방지의약품 관리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입찰 시 퇴장방지의약품만 따로 묶어서 입찰을 받도록하거나 아니면 도서정가제처럼 ‘퇴장방지의
한 제약사 관계자는 “퇴장방지의약품은 제약사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계속 공급하는 것이고 정부도 공급 중단으로 국민의료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라며 “공급원가라도 보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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