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죽어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매일 싸움판만 벌이고 있으니 앞날이 걱정입니다. 집값이며 일자리며 걱정이 태산인데.”
지난 9일 서울 구로구에서 만난 자영업자 이영애씨(56·여)는 “경제 한파도 이런 한파는 처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골목상권에서 작은 상가를 운영하는 그는 “치솟는 전셋값과 속절없는 경기추락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꽁꽁 닫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외 경제를 돌아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 연휴에 고향을 찾은 매일경제신문 기자들이 돌아본 지역 민심은 지난달 심각했던 한파보다도 더욱 냉랭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 속에 설날 사랑방의 대화주제는 ‘경제’로 옮겨졌지만, 이 역시 추락하는 경제에 대한 불안과 분노, 걱정이 민심의 태반을 차지했다. 특히 ‘부동산·일자리·재테크’에 대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 컸다. 또한 최근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에 대한 근심도 흔들리는 민심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경제 분야 최대 관심사는 역시 속절없는 경기 추락이었다. 서울에서 5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정현석 씨(32)는 “경제성장이나 소비·투자 활성화 등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며 “경기회복과 소득증대에 대한 기대는 접은지 오래이고, 현상 유지만이라도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철강·조선 등 장기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동네들의 민심은 더욱 사나웠다. 포항 지역 자영업자 김정래 씨(53)는 “공장이 안 돌아가는데 경제가 좋아질리가 있나”며 “지역 기업들이 성장동력을 잃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종사자 김병국 씨(48)는 “세계 경기 침체를 매일 몸으로 느낀다”며 “실질소득 감소를 넘어 고용불안이 너무 크다”고 털어놨다.
여론은 ‘경제 살리기’를 위해선 ‘기업 살리기’와 정부의 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대전 지역 직장인 김준영 씨는(26) “선거를 앞두고 무분별한 단기 대책을 반복하기보다는 정권교체 이후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장기적인 기업 살리기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기 시흥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김영우 씨(45)는 “하드웨어와 대기업의 시대 이후 한국을 이끌 새로운 경제 동력이 필요하다”며 “세계 시장을 이끌 새로운 먹거리와 내수경제 활성화에 대한 비책을 함께 고민할 때”라로 지적했다.
집값·전셋값 고공행진과 미분양이 속출하는 엇갈리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도 컸다. 다음달 결혼을 앞둔 문지현 씨(31)는 “전셋값이 너무 올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겨우 반전세를 구했다”며 “향후 대출금 부담을 생각하면 목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직장인 최정훈 씨(41)도 “최근 1년새 99㎡ 집값이 1억원이나 올랐다”며 “경기불안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여전히 높아 당장 올해 집을 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반면 박희수(30·인천 서구)씨는 “최근 재건축 물량이 대거 풀리는데다 미분양이 쏟아지고 있어 조만간 무리한 투자를 했던 부동산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설 것”이라며 “저렴한 매물 구입을 신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과 일자리 불안도 여전히 빠지지 않는 설 연휴 단골메뉴였다. 신영옥 씨(54·대전 유성)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자녀의 취업 소식이 아직 들리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인 김희철 씨(27)는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다”며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아서 그런지, 이제는 눈치만 볼 뿐 취직 여부를 먼저 묻는 친인척은 없다”고 전했다.
최근 누리과정 논란 속에 급증하는 자녀 교육·양육비에 대한 우려도 컸다. 창원에서 자영업을 하는 조경숙 씨(37)는 “누리과정 예산 논란으로 보육지출이 늘어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연초 사교육비까지 은근쓸쩍 오르고 있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주식과 펀드를 비롯한 재테크에 대한 기대는 밑바닥을 맴돌았다.
경기도에 사는 주부 조경희 씨(44)는 “주식이나 펀드도 너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며 “신문에선 외국발 악재가 자주 터져 그렇다는데 아무래도 투자하기가 겁난
[전정홍 기자 /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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