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컴퓨터 서버시장에서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기업 A사는 자사의 특허를 무기로 국내업체와 계약을 맺으며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규정이 ‘거래지위’를 남용했다며 다시 계약서를 작성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언뜻 보기에는 공정위 조치가 맞아보인다. 자신이 갑에 있다는 것을 이용해 부당한 계약조항을 삽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사가 미국에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은 시장지배적 지위(보통 특정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기업)에 있는 기업이 불공정 계약을 할 경우에만 경쟁당국이 이를 제재한다. 자유에 기반한 계약까지 경쟁당국이 손을 뻗치면 시장이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논리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독과점적 지위가 없는 경우에는 주로 (경쟁당국의 개입이 없는) 양자 간의 민사소송으로 이를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선 왜 한국에서만 유독 경쟁당국이 사사건건 개입하냐는 불만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부당한 거래행위를 했다가 시정명령 이상 조치를 받은 건수는 50건에 불과하다. 반면 갑을 관계로 인한 불공정거래행위로 조치된 건수는 약 1800여건에 달한다. ‘갑을 관계’가 사회적 이슈가 된 나머지 ‘을을 지키자’는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독과점적 지위가 아님에도 경쟁당국이 개입한 사례가 부지기수로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공정위 고위 관계자도 “굳이 경쟁당국이 개입하지 않아도 될 분야에 대해서 개입하는 바람에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고 밝혔다.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정한 현행 공정거래법 23조를 없애는 대신 ‘을’을 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따로 만들자는 제언도 나온다. 현재 공정위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호영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현행 공정거래법상 중복규제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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