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과 열정으로 업계 1위를 지켜온 ‘제빵왕’ 허영인 SPC그룹 회장(67)은 지난 2005년 연구진에게 특명을 내렸다. 허 회장의 지시 후 곧바로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가 설립돼 기초연구가 시작됐다. 글로벌 베이커리와 경쟁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연구진은 토종 미생물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청풍호수(충주)와 금수산(단양), 옥순봉(제천), 송계계곡(제천), 지리산, 설악산, 강화도, 월출산, 팔공산, 갑사 등 전국 청정지역을 돌아다녔다. 한국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식품 소재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국의 5일장도 찾아다녔다.
효모는 당분이나 영양분, 물을 함유한 밀가루와 섞이면 알코올 발효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빵을 부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빵의 발효를 이끌며 맛과 향, 풍미를 좌우하게 된다. ‘자동차의 엔진’에 비유될 정도로 제빵 과정의 핵심 요소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많은 투자금이 필요해 국내에선 관련 연구가 부족했다. 특히 미생물 분야인 천연 효모의 생화학적·유전학적 특성을 규명하는 기초 연구는 거의 없었다. SPC그룹이 160억원을 투자하고 연구에 매달렸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허 회장은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끈기를 갖지라”며 연구진을 격려했다. 수억원대 실험 장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할 때마다 모두 허락했다. 단 한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지난 2012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이 합류하면서 드디어 연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3년여 동안 강행군 끝에 지난해 한국 전통 누룩에서 발견한 천연 효모 ‘SPC-SNU(서울대) 70-1’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9일 상용화 성공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연구에 착수한지 11년 만이었다.
이 효모를 적용한 빵 27종은 지난 13일부터 전국 파리바게트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스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연 효모를 이용해 빵을 만든 것은 국내 처음이다. 한국 제빵 역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효모는 발효냄새가 적을 뿐만 아니라 다른 원료의 맛을 살려준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담백한 풍미와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며 빵의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도 있다. 제빵왕 허 회장도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식감이 너무 좋고 신맛이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국내 제빵 회사들은 인위적으로 효모를 육종시켜 배양한 이스트에 의지해왔다. 국내 수입되는 효모와 효소제, 유산균 수입 규모는 4400만 달러(약 500억원)로, SPC그룹의 이스트 사용량은 연간 약 3000톤(70억원)에 달했다.
SPC그룹은 토종효모빵 출시로 ‘SPC만의 빵맛’을 갖게 되면서 세계 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측은 해외 가맹사업을 통해 매장이 크게 늘어나고 효모 수출까지 성사되면 ‘K-베이커리’ 경제효과가 훨씬 커질 것
SPC그룹은 천연 효모 ‘SPC-SNU(서울대) 70-1’를 지난해 9월 국내 특허 등록하고 국제 특허 출원도 완료했다. 프랑스와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지정국가 등록도 진행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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