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기준금리는 한국이 연 1.5%로 미국 0.25~0.5%보다 훨씬 높지만, 10년만기 국고채금리는 한국이 1.93%로 미국 1.816%보다 오히려 낮다. 장기 채권값이 이론과 달리 한국이 미국보다 더 비싸졌다는 얘기다.’
한국판 양적완화 기대감이 시장에 팽배하면서 한국과 미국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이례적으로 역전된 상태가 일주일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들어 미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둔 경계감에 위험자산 선호까지 확대되며 7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지난 26일 금리는 1.93%로 지난 3월 22일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한국 채권금리는 글로벌 채권시장과 정반대로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올 들어 1%대에 진입해 1.811%까지 떨어졌다. 4월 들어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금리가 상승하며 채권 약세 압력이 높아졌지만 국내 채권시장만 홀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특히 미국 채권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국내 채권시장의 탈동조화는 이례적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은행 기준금리나 국가 리스크를 감안하면 한국 금리가 미국보다 당연히 높아야 하는데 양국 통화정책 방향성이 엇갈리며 장기 채권 금리수위가 뒤바뀐 것이다. 자넷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연내 2~3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했고, 한국 시장에선 양적완화 및 향후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기 때문이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한국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20일 이달들어 첫 역전된 이래 26일에는 그 차이가 0.11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12월이나 올 3월에도 일시적으로 한·미 장기 금리가 역전된 적은 있지만 이처럼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진 것은 지난 2004년말 이래 11여년만에 처음이다.
국고채 10년물 금리 역전 현상은 지난 2004년에도 나타난 바 있다. 미국은 2004년 6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한국은행은 2004년 8월과 11월 두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통화정책 방향성이 엇갈리면서 자연스럽게 한미 금리 역전으로 이어졌다.
최근 국내 채권시장 강세 배경에는 양적완화 기대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미선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시장은 이미 양적완화를 기정사실화했다”며 “한국은행의 산금채 매입 방식이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한 증자 방식이든 간에 발권력을 동원한 유동성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금통위원의 교체와 지난 주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서별관회의 참석 소식에 기준금리 인하 전망도 강화되고 있다. 문홍철 동부증권 팀장은 “조선·해운업종 구조조정 이슈에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까지 0.4%로 하락하며 경기침체 우려가 확대됐다”며 “연내 한차례 이상 기준금리 인하가 유력하다”고 말했다.
한미 국고채 10년물 금리 역전현상이 강화되며 일각에선 외국인 자본 이탈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장기채권 금리 역전으로는 급격한 자본 이탈이 나타나지 않지만 최근 만기가 짧은 국고채 3년물과 5년물 금리 차이도 상당히 좁
문 팀장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한미 금리 역전으로 국내 장기채권 투자매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올 6월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한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반대방향 정책이 지속된다면 단기 금리 역전으로 이어지고 외국인 자금도 이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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