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대표적인 경제부문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한국의 적정 달러당 원화값을 1007원으로 제시했다. 9일 현재 달러당 원화값이 1156원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 원화의 화폐가치가 140원 이상 평가절하돼 있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 3일 제이컵 루 미국 재무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유일호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잇따라 만난 자리에서 “재정, 통화, 환율 정책에 대해 대화를 강화하자”며 우회적인 통화 압박을 한 직후 나온 미국 싱크탱크 주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2016년 5월 기조적 균형 환율에 대한 평가’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연구소가 잣대로 내세운 적정 환율 평가 방식은 ‘국내총생산(GDP)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 3% 내외’다. GDP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이 3%면 균형으로 보는 것이다. 흑자 비중이 초과할 경우 현재 상대국의 통화 가치가 절하돼 있다고 판단하며 반대로 낮을 경우에는 절상돼 있다는 판단이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국가는 모두 34개국. 하지만 이 같은 잣대에 따르면 대다수 국가들의 통화가 평가절하돼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콜롬비아 정도가 예외였다.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원화는 미국 달러화 대비 평가 절하된 기준으로 상위 3위였다. 싱가포르가 39.7%로 1위를 차지했고 이어 대만은 34.5%, 한국 13.9% 순이었다. 뒤를 이어 홍콩 13.5%, 스위스 13%, 말레이시아 12.9%, 인도네시아 12.3%, 일본 12.2%, 중국 8.8% 등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이 현재 통화가치가 절하돼 있는 것으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분석했다. 이에 반해 유로존 6.6%, 영국 6.3%, 캐나다 2% 등 비 아시아권 지역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수준이 낮은 것으로 분석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한국은 지난해 GDP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이 7.1%에 달하고 있다”면서 “2021년 5.6%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그래도 통화가치가 저평가 받은 국가군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미국 싱크탱크의 보고서에 미국 정부 견해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경제학회장 출신인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미국 재무부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싱크탱크”라며 “미국 재무부가 이를 활용해 각국에 의견을 개진하고 있거나 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지난해 6번째 대미 무역 흑자국이다. 중국(3657억달러), 독일(742억달러), 일본(686억달러), 멕시코(583억달러), 아일랜드(304억달러), 한국(283억달러) 순이다.
최근 미국내에서는 대미 무역흑자국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모두 미국이 대규모 적자에 빠진 이유가 특정국의 인위적인 환율 조작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새로 선출될 미국 대통령이 대미무역 흑자국에 대한 환율정책을 주시할 가능성이 매우 큰 대목이다.
미국내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미국 재무부도 대미 무역 흑자국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재무부는 환율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포함해 5개국을 관찰 대상국 (Monitoring List)으로 지정했다. 1년간 모니터링한 뒤 언제든지 통화 절상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단순히 경상수지만 갖고 적정 환율을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 “현재 우리 경제는 수입이 수출 보다 더 큰 폭으로 줄어든 불황형 흑자 구조인데다 고용도 예상보다 부진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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