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희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지난 3월 역외소득·재산 자진신고 기간이 끝날 때 까지, 소득이나 재산을 해외에 숨겨두고도 자진신고 하지 않은 역외탈세 법인과 개인 등 혐의자 36명에 대해 6월 일제히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파나마 법무법인 모색 폰세카의 유출 자료인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거 포함됐다. 앞서 알려진 파나마페이퍼스에는 조세회피처에 서류상 회사인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이름이 약 200명 정도 올라 있다. 노태우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현씨를 비롯해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고 서성환 회장의 장남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 장진호 전 진로 회장, 보루네오가구 위상식 전 회장 부자 등이다.
한 국장은 파나마페이퍼스와 관련해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인물은 3~4명 정도이고, 문건이 공개되기 전에 조치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총 10명쯤 된다”고 설명했다. 또 조사 대상에 대기업 사주 일가가 포함돼 있냐는 질문에 “특정 개인이나 법인에 대해서는 얘기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지금까지 조치되고 진행되고 있는 역외탈세 조사 중 대기업 관련 계열사도 일부 포함돼 있다. 몇 군데인지도 밝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이 15일 이례적으로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 착수 사실을 밝힌 까닭은 국부 유출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한승희 조사국장은 “역외탈세는 반드시 처벌된다는 사실이 인식되도록 모든 조사역량을 결집해 엄정하게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면서 “따라서 납세자들은 해외 소득이나 재산에 대해서는 정직하고 성실한 신고가 최선의 방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역외탈세자들은 모범을 보여야할 사회적 고위층인데다 소득과 재산 은닉으로 세금을 탈루했을 뿐 아니라 재산 이전을 통해 국부마저 유출했다는 것이 국세청 판단이다.
이번 조사 대상자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페이퍼컴퍼니를 경유해 법인 재산을 사주가 유용하거나 주식 양도차익을 은닉한 경우 등이다.
A사는 영국령 버진아릴랜드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투자 명목으로 현금을 송금한 뒤 이를 다시 사주 개인이 설립한 현지 법인에 재투자하고 사주가 이를 사적으로 이용했다. 또 B사는 해외 법인 주식을 페이퍼컴퍼니에 낮은 값에 양도 한 뒤 이를 제3자에게 높은 값에 다시 양도하는 방식으로 양도차익을 조세회피처에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밖에 C사는 현지 법인에 중개 수수료 용역대가 등 명목으로 가공비용을 지급 한 뒤 사주가 이를 유출해 유용한 것으로 국세청은 판단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국세청은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역외탈세 혐의 약 30건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해 총 2717억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또 이 가운데 고의로 세금을 포탈한 사실이 확인된 10건에 대해서는 해당자의 출국이 금지되고 필요 자료를 강제 압수 및 영치할 수 있는 단계인 범칙조사로 전환해 진행하고, 6건은 조세범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국세청이 고발한 사례를 살펴보면, 한 해운사 사주 D씨는 법인 재산을 유용하다 소득세와 증여세 등 500억원 이상 세금을 추징당했다. 그는 조세회피처에 임직원 명의로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한 뒤 이 법인을 통해 선박을 운용하면서 벌어들인 회삿돈을 홍콩에 있는 해외 차명계좌로 빼돌렸다. 이후 환치기를 통해 국내에 다시 들여와 유용하다 적발됐다. 이 업체는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해운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역외탈세를 뿌리 뽑고자 적극적인 제보를 받고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페이지(nts.go.kr)에 있는 코너인 해외탈루소득신고센터를 통해서다. 탈루·포탈세액 산정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경우 최대 30억원을 지급하고, 미신고 해외 금융계좌 적발에 중요
아울러 국세청은 내년 이후 ‘다자간 금융정보 자동교환협정’ 등에 따라 미국과 스위스 등 전세계 101개국으로부터 해외금융정보를 수집해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만큼 해외 재산 은닉이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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