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가 선정하는 신차품질조사(IQS)에서 현대차 쏘나타가 중형차 부문 1위에 오르자 외신들은 ‘사람이 개를 문 것만큼이나 쇼킹한 일’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대·기아차는 ‘고장이 잦은 싸구려 차’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이 출범한 지난 2000년 미국 신차품질조사에서 37개 전체 차메이커 중 현대차는 34위, 기아차는 꼴찌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올해 제이디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기아자동차는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벤츠, BMW, 렉서스, 포르쉐 등 글로벌 차메이커를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 현대차도 글로벌 전체 순위 3위에 올라 2006년 이후 처음으로 톱3에 진입했다.
현대기아차는 제이디파워가 22일(현지시간) 발표한 ‘2016 신차품질조사’에서 33개 전체브랜드 가운데 기아차가 1위(83점), 현대차가 3위(92점)에 올랐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2006년과 2014년, 기아차가 2015년 일반브랜드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은 있지만, 벤츠·BMW·렉서스 등 럭셔리 브랜드가 모두 포함된 전체 브랜드에서 한국차가 1위를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신차품질조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를 대상으로 구입 후 3개월이 지난 차량의 고객들에게 품질 만족도를 조사해 100대당 불만건수로 나타낸 결과다.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만족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개별 차종별로도 현대기아차는 올해 역대 최대 성적을 냈다.
현대차 엑센트(소형) 그랜저(대형), 기아차 쏘울(소형 다목적) 스포티지(소형SUV)가 각 차급에서 각각 1위에 올라, 현대기아차는 2년 연속으로 4개 차종이 ‘최우수 품질상’을 수상했다. 특히 엑센트는 소형 차급에서 3년 연속, 쏘울은 소형 다목적 차급에서 2년 연속으로 ‘최우수 품질상’을 수상하며 우수한 제품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또 현대차의 제네시스(DH) 아반떼 벨로스터 투싼, 기아차의 프라이드 K3 쏘렌토 등 총 7개 차종이 차급 내 2위와 3위에게 주어지는 ‘우수 품질상’을 수상했다.
이제 현대기아차는 새로 론칭한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내년부턴 제네시스도 독립된 럭셔리 브랜드로 소비자평가를 받는다.
현대기아차가 불과 16년만에 글로벌 소비자 만족도 꼴찌 수준에서 최고 등급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정몽구 회장의 타협없는 ‘품질 제일주의’ 경영철학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1999년 현대차 회장으로 취임한 정 회장은 그해 초 수출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품질이 뒷받침 되지 못했던 현대차가 소비자들로부터 리콜 요청을 수없이 받으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어서였다.
정 회장은 1999년 미국 출장길에서 돌아오자마자 ‘신차 출시 일정을 미루더라도 부실한 생산라인을 중단하라’고 지시한다. 품질경영을 위해서였다. 제이디파워에 품질관련 컨설팅을 받도록 했고, 품질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그해 미국 시장에서 ‘10년 10만마일 워런티’ 공약을 발표하기 이른다. 당시 미국시장을 꽉 잡고 있던 도요타나 혼다 등 일본 경쟁사들은 현대차의 워런티 정책을 ‘미친 짓’이라고 비웃었지만, 정 회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결국 현대기아차의 이런 품질제일주의는 미국서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고 대성공을 거뒀다. 일본차의 워런티도 ‘2년 2만4000마일’에서 ‘5년 6만마일’로 슬그머니 늘어났다.
정 회장은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믿고 탈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며, 그 기본이 바로 품질”이라는 ‘품질 제일주의’ 원칙을 여전히 강조한다. 특히 최근 정 회장은 ‘품질 안정화’를 넘어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품질 고급화’를 새로운 화두로 제시했다. 이 같은 품질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은 제네시스라는 럭셔리 독자 브랜드 탄생으로 이어졌다.
정 회장은 올해 현대기아차 신년시무식에서 “최고의 품질과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신차를 고객에게 제공하여 브랜드 가치를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며 “특히 ‘제네시스 브랜드를 세계시장에 조기 안착시키고, 브랜드 차별화를 위한 전사적 노력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차로 육성할 계획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현대·기아차는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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