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동에 사는 30대 주부 안주현 씨는 최근 구매한 천연 화장품의 성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태로 인해 화학성분에 민감해진 안 씨는 일부러 ‘내추럴’이라고 쓰여있는 크림을 구매했는데 방부제의 한 종류인 페녹시에탄올, 계면활성제 등 천연 화장품에는 들어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화학성분들이 함유돼있었기때문이다. 안 씨는 “제품에 천연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 화학성분을 최소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많은 화학성분이 들어있어 당황스럽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공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학제품으로까지 번지면서 ‘천연’이나 ‘유기농’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피부에 직접 닿는 화장품의 경우 화학성분이 들어간 제품 대신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및 유기농 화장품을 더 선호하는 추세다.
화학성분이 배제된, 안전한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천연 화장품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 따르면 지난 2012년 2조 3,000억원이던 국내 천연 화장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3조 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유기농 화장품과 달리 천연 화장품이나 자연주의 화장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기준이 없어 소비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천연 화장품은 천연 원료가 1%만 들어있어도 천연이라고 광고할 수 있다. 99%가 화학성분이어도 천연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이처럼 천연 원료를 극소량 넣고 ‘천연’, ‘내추럴’, ‘자연주의’ 단어로 광고를 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보니, 용기에 천연이라고 표기돼 화학성분이 없는 줄 알고 구매했다가 낭패를 보는 안씨같은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물론 용기 뒷편에 표기돼 있는 성분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아주 작은 글씨인데다 용어가 워낙 어려워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오픈마켓 G마켓에서 ‘천연 화장품’을 검색하면 약 2600개의 제품이 나오지만 이 중 꼭 필요한 화학성분만 넣은 제품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화학성분을 식물원료로 대체하려면 원료 값이 너무 비싸 업체들이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결국 자연주의나 천연 화장품이란 용어는 브랜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식물추출물이 들어 있어 피부에 더 순할 것이다’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인 셈”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같은 천연 화장품 가이드라인의 부재로 인한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지만 섣불리 기준을 만드는 것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가이드라인이 또 다른 규제를 만드는 것이란 부정적인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천연화장품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현재 없지만 최근 ‘천연’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기준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내부적으로 검토중인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만큼 또 다른 규제를 만드는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있어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선진국 경우는 어떨까. 미국, 유럽 등도 천연 화장품에 있어선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고 브랜드에 자율적으로 맡기는 편이지만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은 신뢰도 높은 천연 화장품 인증기관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럽의 평가기관 나트루(NaTrue)는 ‘천연 및 천연에 가까운 원료를 사용한다‘는 규정을 통과하는 제품에 한해 천연화장품(Natural Cosmetics)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프랑스의 에코서트(Ecocert)는 ‘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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