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일용직 근로자 절반이 여기서 일한다는 얘기도 있어요. 인근 공터는 죄다 주차장이 되어 버렸네요.”
삼성디스플레이의 주력 사업장이 있는 충남 아산시 탕정면. 최근 찾은 이 곳은 점심시간이 되자 거대한 인력이 공장을 빠져나와 인근 상가를 점령했다. 모두 삼성디스플레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생산시설 증설 작업에 투입된 건설 인력들이다.
인근 편의점 주인은 “3일에 한 번 물건을 공급받다가 요즘은 하루에 3번 매대를 채운다”며 “커피와 담배는 갖다 놓기 무섭게 팔려나간다”고 설명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현재 주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중소형 OLED 패널을 생산하는 A3 공장 증설 작업을 한창 진행중이다. A3는 중소형 OLED 중에서 가장 큰 크기인 6세대(1500X1850) 기판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 생산능력은 월 1만5000장인데 올 하반기에는 두 배 가량 늘어나게 된다. 업계에서는 내년까지 총 9만장을 추가로 생산하는 능력을 갖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 것은 수익성이 좋고 향후 성장성을 감안해 중국과 일본 등 경쟁업체들이 호시탐탐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업체들에게 시장을 허용하지 않고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에서다.
최근 만난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중견기업 A 대표는 “삼성의 독주를 막기 위한 거대한 전쟁이 (동북아에서) 시작됐다”며 “협력업체들도 어디에 줄을 서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정도”라고 전했다. 한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창과 방패의 싸움에 일본이 가세하면서 ‘IT 신삼국지 전쟁’이 본격화됐다는 진단이다.
3국간의 전쟁 대상은 중소형 OLED 패널과 3D(3차원) 낸드플래시 반도체다. 시장 규모가 각각 133억달러와 65억달러로 추산되는 두 제품은 2020년에는 각각 30조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성이 높은 제품이다.
두 가지 부품은 삼성이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물량을 사실상 독점공급하는 최첨단 IT분야다. 스마트폰용 OLED 디스플레이는 삼성이 98.3%를 점유하고 있고 3차원 낸드플레시는 삼성이 단독으로 공급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의 최대 경쟁상대인 삼성전자 부품 만큼은 쓰지 않으려고 하는 애플마저도 내년부터 이 두 분야의 삼성부품을 어쩔 수 없이 아이폰에 쓸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삼성의 아성을 깨고 수익을 나눠가지려는 중국과 일본이 대규모 실탄을 마련해 기회를 노리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앞세워 이 분야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국영반도체 회사인 XMC가 240억 달러(약 27조5000억원)를 투입해 후베이성 우한에 3D 낸드플래시공장을 짓기로 했다. 미국 반도체설계업체인 스팬션과 합작해 지어지는 이 곳은 2018년부터 월 20만장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 시안공장 생산량의 2배를 만들겠다는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최근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끝낸 일본의 도시바가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 손을 맞잡고 일본 미에현 욧카이치공장에 3D낸드 생산공장을 새로 건설하기로 했다. 기존 공장에도 3D 낸드생산을 위한 최신 설비를 들여와 삼성독주를 막겠다는 전략이다. 투자규모만 1조5000억엔(약 16조5000억원)에 달한다. 도시바는 현재 거의 제로상태인 3D낸드 생산비중을 2017년엔 50%, 2018년엔 80%까지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이같은 거센 공세에 맞서 삼성은 방어보다는 공격적인 투자로 멀찌감치 따돌린다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생산라인을 단순히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서 경쟁업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장비업체까지 장악해버리는 단계다. 방패보다는 날선 창의 전략을 세운 셈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최근 3D 낸드플래시 반도체 생산전략을 사실상 전면 수정했다. 월 10만장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 시안공장의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한국 화성과 평택 등의 반도체라인을 활용해 3D 낸드 생산설비를 증설하기로 했다. 3D 낸드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만 연간 10조원이상 투입할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초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공장에 최첨단 반도체 시설인 3D낸드 생산라인을 지은 것은 암묵적으로 중국이 이 분야는 삼성에 맡겨달라는 의미가 있었다”며 “최근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자 삼성도 3D낸드 생산을 국내로 돌릴 것으로 봐야하지 않겠냐”고 분석했다. 삼성입장에서는 최대 핵심수익원인 3D 낸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내줄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설명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중소형 OLED 디스플레이시장도 한·중·일 격전장이다. 삼성은 최근 핵심 OLED 생산장비 공급업체를 사실상 싹쓸이했다. 향후 2년간 물량을 미리 주문해버리는 방식으로 다른 업체의 진입을 최대한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내년까지 중소형 OLED 증설에만 10조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기존에 아이폰용으로 LG디스플레이와 일본 샤프 등의 액정표시장치(LCD)만을 고집했던 애플이 내년부터 OLED 패널을 채택하면서 삼성디스
삼성 협력업체 관계자는 “향후 2년 동안 중국이든 일본이든 경쟁업체들이 중소형 OLED 디스플레이 공장을 새롭게 짓거나 증설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핵심 장비 업체들은 삼성 수주분 외에 추가 생산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성훈 기자 / 아산 =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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