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임상군씨(50·남)는 지난주말 골프를 치다 깜짝 놀랐다. 비거리가 10% 이상 늘어났던 것. 동료에게 받은 ‘방사선 맞은 골프공’이 원인이었다. 그는 “방사선을 쪼인 공이 더 멀리 나간다는 말을 듣고 긴가민가했는데 실제 필드에서 쳐보니 비거리가 확실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소나 X-선 등에서 검출되는 방사선은 공포의 대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에 인체가 노출되면 DNA 파괴가 일어나거나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구토나 어지러움증은 물론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잘 활용하면 일상생활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최근에는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온실가스, 미세먼지 등을 제거하기 위한 후보로도 떠오르고 있다. 잘못쓰면 독이지만, 잘 쓰면 약이 되는 셈이다.
1988년부터 캐나다원자력공사(AECL) 연구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골프공을 ‘전자빔 가속기’를 쏘이는 기계에 넣었다 빼고 나면 비거리가 약 10% 이상 늘어난다는 경험담이다. 1992년, 실제로 AECL은 3명의 프로 골퍼 선수들에게 방사선을 쪼인 골프공 12개와 일반공 12개를 무작위로 주고 드라이브를 치도록 한 뒤 얼마나 멀리나가는지를 실험했다. 방사선을 쪼인 공이 실제로 10% 이상 비거리가 늘어난 것이 확인됐다. AECL은 “전자빔 가속기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은 골프공 내부의 분자구조를 바꾼다”며 “분자구조가 치밀해지면서 골프공의 탄성력이 향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사선을 쪼였다고 해서 골프공에서 방사선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방사선은 골프공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물론, 방사선을 쪼인 공은 정식 대회에서 사용할 수 없다.
방사선은 이밖에 전선피복, 타이어, 항공기용 경량 고강도 재료 등에 이미 활용되고 있다. 전선 피복에 전자빔을 쪼이면 내열특성이 향상된다. 방사선이 갖고 있는 에너지가 물질의 구조를 바꿈으로써 특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유승호 한국원자력연구원 공업환경연구부장은 “고분자에 전자빔을 쪼이면 길게 늘어선 고분자가 단단하고 치밀하게 결합된다”며 “전선에 전자빔을 쪼이면 내열성, 절연성이 향상되면서 불에 잘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활하수에서 발견되는 항생제와 항생제 내성 미생물도 방사선을 이용하면 제거 가능하다. 사람이 항생제를 먹으면 대부분의 약물은 배출돼 생활하수로 흘러간다. 병원에서 흘러나오는 하수에도 항생제를 비롯한 의약물질과 항생제에 저항성을 가진 DNA를 보유한 미생물이 상당히 함유돼 있다. 기존 하수처리 장치로는 이같은 항생제나 특정한 미생물을 걸러내는 것에 한계가 있다. 하천에 이같은 미생물과 DNA가 쌓이면 ‘생물간 전이현상’이 발생, 상당히 많은 미생물이 이같은 특성을 갖게 될 우려가 존재한다. 하천을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사람이 이같은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생활하수에 전자빔을 쏘여 이같은 항생제를 포함한 의약물질, 병원성미생물과 항생제저항유전자를 가진 미생물을 동시에 처리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물에 전자빔을 쏘이면, 자연에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불안한 물질인 ‘라디칼’이 만들어진다. 라디칼이 안정된 물질로 변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나 미생물을 파괴한다.
자외선을 활용해서 생활하수를 정화시키는 기술은 이미 활용되고 있지만 이경우 미생물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구된다. 유 부장은 “항생제 저항 유전자는 물론 독성을 갖고 있는 미생물을 분해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방사선은 물을 통과할 뿐이기 때문에 전자빔을 거친 물에서는 방사선이 방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같은 방사선은 온실효과인 ‘육불화항(SF6)’ 제거에도 효과적이다. 이산화탄소보다 2만 3000배나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육불화황은 변압기나 차단기 등 ‘중전기기’에 사용된다. 오래된 중전기기를 분해할 때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육불화항에 전
[정읍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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