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부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까지 글로벌 경제가 불확실성을 나타내자 신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과거에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 반덤핑 등 직접적인 방식을 선호했다. 글로벌 공조가 중요해진 요즘에는 무역기술장벽(TBT), 무역구제조치, 반독점법 등의 우회 방식을 사용하는 추세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80~90%을 오가는 우리나라는 이러한 국제적 이슈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문제는 자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에 적용하는 기준이 달라질 때 발생한다.
국내 대표 규제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가 IT, 제약, 조선 등의 산업 전반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를 제기해 조사하거나 제재를 가하면서 무역 상대국들과의 미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안방에서 국내 기업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했던 기준이 해외에서 적용될 때는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예상되자, 수출 중심의 국내 기업들은 해외 주력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예의 주시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삼성은 세계 완제품 휴대폰 시장의 2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애플, 화웨이, OPPO, VIVO, LG 순이다.
이로써 미주, 유럽, 아시아 전역에서 국내 제조사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 오랜 시간을 끌어왔던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분쟁에서 삼성의 표준특허를 사용해야 하는 입장인 애플은 부품 단위 라이선싱, 다시 말해 단말기 내에 탑재되는 특정 부품의 가격에 실시료율을 반영해야 한다며 삼성전자가 요구하는 로열티 액수가 과하다고 주장했다.
3G통신기술 표준특허권자인 삼성전자는 제품 단위 라이선싱, 즉 단말기 가격에 실시료율을 반영하는 것이 업계 기준이라고 반박했다. 휴대폰이 단순 통신 도구를 넘어 카메라, 디스플레이, 배터리, GPS, 통신칩셋 등 수많은 부품을 통해 여러 시스템과 융합하는 첨단 기술의 총체로 진화하면서 이동통신 기술의 가치는 개별 부품이 아니라 단말기라는 최종 제품을 통해 결정된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수십 년 간 삼성뿐 아니라 LG, 모토로라, 노키아, 에릭슨,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디지털, 알카텔루슨트, 지멘스, 퀄컴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동통신 생태계 내 기업들이 단말기 단위로 라이선싱하는 것에 합의해왔고 이를 업계 기준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동통신시장이 어느 분야보다 첨예하게 경쟁중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라이선스 방식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거래 방식으로 통용돼 왔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각각의 부품 제조사들은 로열티 부담 없이 부품 개발과 판매에 주력해 전체 생태계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모바일 칩셋 제조회사인 퀄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를 조사하면서 업계에서 통용됐던 제품 단위 라이선싱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했다는 것이다.
국내 칩셋 제조사의 수출 길을 밀어주어야 할 때는 제품 단위의 라이선싱이 칩셋으로 인한 혁신의 온전한 대가라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해외 칩셋을 사용하는 사용하는 단말기 제조사 편을 들어야 할 때는 부품 단위의 라이선싱이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한
안팎의 정책이 무조건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비일관성도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이 장래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불공정하고 과도한 규제로 적용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
[디지털뉴스국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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