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9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벤츠, BMW 등 14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법률세미나를 개최한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회원사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김영란법이 미치는 영향은 특정 업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지만 유독 수입차가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신차 출시 및 시승행사 등 수입차 마케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들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거침없는 상승가도를 달려온 수입자동차 시장이 김영란법과 인증조작 파문이라는 양대 악재에 봉착해 술렁이고 있다. 폭스바겐 사태로 이미 성장세가 꺾인 상태에서 두 악재까지 더해질 경우 수입차 시장에 ‘빙하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 연속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9년 6만993대였던 수입차 등록대수는 지난해 24만3900대로 4배 넘게 몸집이 불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4.94%서 15.53%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올들어 폭스바겐 사태가 일파만파 확대된 결과 상반기 수입차 점유율은 14.64%로 뒷걸음질 쳤다.
상반기 수입차 부진이 순전히 아우디폭스바겐 그룹의 판매감소에 기인한 것이라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두가지 악재는 업계 전반에 걸친 문제라는 점에서 보다 심각하다. 먼저 김영란법이 적용되면 그동안 수입차들의 ‘성공 공식’이 무력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수입차 성장세를 뒷받침한 것은 공격적 마케팅이다. 한국 시장 잠재력을 바라보고 신차 출시를 크게 늘렸고 신차가 나올때마다 대규모 출시 및 시승 행사가 이어졌다. 수입차의 미디어 노출 빈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직간접적 접촉 기회가 늘면서 수입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은 현저히 완화됐다. 여기에 파격적인 할인으로 가격 문턱까지 낮아지면서 ‘수입차 대중화시대’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김영란법 시행이후엔 지금과 같은 형태의 미디어대상 출시.시승.해외출장은 쉽지 않게 됐다.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골프대회, 문화 공연, 각종 초청 이벤트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법 적용 대상인 공무원·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이 포함되면 문제가 되는데 이것저것 피해가면서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수입차 관계자는 “영업력에서 국내차를 따라갈 수 없는 수입차로선 미디어행사와 VIP고객행사가 흥행과 직결되는 마케팅 전술”이라며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수입차의 중장기 경쟁력에 그늘을 드리운다면 환경부가 수입차 인증서 조작 관행에 대해 조사에 나선 것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앞으로 환경부 조사에서 인증서 조작 사실이 드러나는 기업은 당연히 판매정지. 과징금. 이미지손실 등의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런 최악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수입차 업계가 져야할 추가부담은 따로 있다. 우선 환경부 인증이 까다로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폭스바겐을 통해 난맥상이 훤히 드러난 마당에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서류심사로만 인증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업계에 요구하는 기준이 올라갈 것이고 영세대행사를 통해 대충 서류를 꾸며 제출하는 ‘호시절’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신차 인증에 걸리는 절대적인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본사에서 테스트를 별도로 실시해야 하는 차량이라면 아예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를 둘러싼 여건 변화로 인해 신차 출시가 최근 몇년간 그랬던 것처럼 원활하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여기에 마케팅 위축까지 더해지면 수입차 시장이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노원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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