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304년 집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었다.” “630년 궁전의 땅이 갈라졌다.” “779년 집들이 무너지고 100여명이 죽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과거 경주 지역에서는 10여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다. 이 부근에 지진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경주를 가로지르는 ‘단층(지각이 쪼개져있는 상태)’의 존재가 처음 밝혀진 것은 1983년 서울대 교수진에 의해서다. 바로 지난 12일 경주에 리히터 규모 5.8의 지진을 일으킨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양산단층’이 이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지진으로 양산단층이 힘을 받아 변형이 생겼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이 규모 5.8에서 멈출지, 더 큰 지진이 뒤따를 지는 양산단층은 물론 인근에 이어진 울산단층, 동래단층 등의 움직임에 달려있다.
양산단층은 한반도 남동쪽에 위치하는 대규모 주향이동단층이다. 주향이동단층이란 단층으로 갈라진 두 지각판이 경사와는 상관없이 단층면을 따라 수평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북동, 남서 방향의 선구조로 영덕, 경주, 부산 서쪽으로 200km 가까이 이어져있다. 양산단층이 위치한 한반도 동남부는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 필리핀판의 상호작용으로 광역적인 지각변동이 신생대 이후 이어져왔다.
발견 초기 양산단층은 지각 활동이 활발한 ‘활성단층’인지, 움직임이 없는 ‘비활성단층’인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잦은 지진으로 현재는 활성단층으로 자리잡았다. 지각이 갈라진 단층이 존재하는 만큼 이 지역에서는 언제든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선창국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재해실장은 “양산단층은 수직 방향이 아닌, 수평방향으로 미는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응력이 쌓이다가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지각 경계면이 깨지거나 흔들리면서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양산단층을 자극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올 4월 규슈 지진 등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규슈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미 한반도에서 1~5년 이내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점쳐졌다.
양산단층이 있는 지역은 울산단층과 일광단층, 동래단층 등이 추가로 존재하는 지역인 만큼 작은 힘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행히 이번 지진은 양산단층 서쪽에서 발생했다. 그동안 이 부근 지진은 모두 동쪽에서 일어났다. 지헌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장은 “그 동안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단층의 서쪽지역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쌓여있던 응력이 분출됐다는 의미”라며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지진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다행스런 대목이다. 지난 4월 일본 규슈에서 발생한 지진도 지진판의 중심부에서 발생했는데, 규모가 큰 전진에 이어 본진이 뒤따른 뒤 수백차례의 여진이 있었다. 경주 지진과 같은 패턴이다. 선창국 실장은 “여진 발생하는 시간의 간극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며 “과거 유사 지진과 비교했을 때 땅이 어느정도 힘의 평형을 이루면서 더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한반도의 단층 구조가 심하게 뒤틀렸거나 생각보다 많은 변형이 발생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미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한반도의 동쪽은 5cm, 서쪽은 2cm씩 동쪽 방향으로 끌려간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후 지각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규모 1~3.0 수준의 무수히 많은 지진이 발생했다. 선 실장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반도 지각에 큰 변이가 있었고, 이후 이것은 비선형적으로 움직이며 제자리를 찾고 있을 것”이라며 “땅은 탄성과 소성(외력에 의해 형태가 변한 물체가 외력이 없어져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지 않는 성질)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는 만큼 불균형하게 움직이며 응력이 쌓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산단층 서쪽에서 발생한 것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나온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단층이 활성화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 실장은 “활성단층에 대한 조사가 상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질
[신찬옥 기자 / 원호섭 기자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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