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화물을 하역하는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어 물류대란 해소의 물꼬는 트였지만, 풀어야 할 매듭은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물 하역에 자금을 모두 써버린 한진해운은 협력업체에 밀린 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상태여서 해운업계 종사자들의 실직 위험이 여전한데다 국내 항만의 환적화물 이탈이 현실화되고 있어서다.
2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물류대란 사태 초기 며칠에 한척 꼴로 접안하던 한진해운 선박들은 최근 하루 2~3척씩 화물을 하역하고 있다. 이날까지 부산항만공사가 관리하는 28척의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 18척이 20피트 컨테이너 5만4850여개를 내렸다. 남은 10척의 화물은 10월 초까지 모두 내릴 수 있을 것으로 항만공사는 예상했다.
부산항의 공간 부족 문제도 해결되고 있다. 외국 항만에 입항하지 못하는 한진해운 선박들이 화물을 부산항에 내리면서 한때 장치장 부족으로 비상이 걸리기도 했지만 항만공사가 배후 단지 공간을 활용하고 중국의 일부 항만에서 하역작업이 재개돼 숨통이 트였다.
부산해양수산청 관계자는 29일 “부산항에 화물을 모두 내리기로 했던 선박 가운데 4척이 닝보항에 입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대기 중인 선박들도 현지 하역이 여의치 않으면 부산항으로 오는 대신에 중국 항만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선박에 실린 화물을 하역해야 하는 급한 불은 잡히고 있지만 한진해운의 협력업체들은 경영난을 우려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거래하는 부산지역 업체는 289곳, 종사자는 1만1840명에 이른다. 이 업체들이 한진해운에서 받지 못한 돈은 538억6천700만원에 이른다.
한진해운으로부터 받지 못한 돈은 터미널 운영사가 432억4900만원으로 가장 많고, 화물고박업(래싱) 21억3400만원, 선용품공급업 19억3500만원, 예선업 17억6300만원, 화물검수업 16억3500만원 등이다. 터미널 운영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세 업체들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거래 비중이 큰 일부 업체는 도산 직전에 놓였다고 전했다. 법원이 법정관리를 개시한 뒤인 9월 작업분에 대해서는 대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전에 밀린 돈은 수금이 확실치 않다.
협력업체들이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 관련 종사자들은 실직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진터미널에서 야드 트랙터로 화물을 옮기는 협력업체 근로자 100여명은 이미 일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거래처가 한진해운 한 곳인 업체들은 일감이 줄어 일부 직원을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에서는 항만 근로자들의 대량 실직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기적 문제로 지적됐던 국내 항만의 환적물량 이탈은 벌써 현실화되고 있다. 한진해운이 해운동맹 CKYHE에서 사실상 퇴출된 데다 내년 4월에 출범할 새 동명체 디 얼라이언스 합류도 불투명해지면서 부산항으로서는 막대한 환적화물 이탈을 우려하는 처지에 놓였다.
CKYHE를 주도하던 한진해운이 부산항에서 처리한 환적화물은 연간 20피트 기준 100만개에 이른다. 한진해운의 동맹 선사들의 환적물량도 40여만개나 된다. 해운업계는 부산항 환적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진해운이 사라지거나 해운동맹에서 빠지면 외국선사들이 부산항에서 환적화물을 처리하지 않고 자국 항만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최대 60만개 이상이 이탈할 것을 우려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1
이에 항만공사는 부산항의 환적화물 이탈을 막기 위해 연말까지 150억원에 이르는 각종 인센티브를 추가로 제시하고 나섰다. 하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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