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복합상영관이 영화 배급사와 계약서 작성을 엉터리로 하고 입맛대로 상영일수를 조정한 게 문제였습니다.
윤호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동물원의 코끼리 사육사로 살아가는 한 장애인의 삶을 그린 영화, '파란 자전거.'
지난해 4월 19일 개봉했지만, 이 영화는 상영 6일 만에 영화관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돈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처럼 개봉하기 무섭게 내려버리는 영화계 관행에는 멀티플렉스, 즉 대형복합상영관의 '횡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 영화 제작 관계자)
- "(극장이 배급사 영화를) 안 걸어 주면 망해요. 지금 그래서 개봉 못 한 영화도 많잖아요. 극장측한테 매달리다시피 해도 영화를 안 걸어주거든요."
무엇보다 엉터리 계약서가 문제입니다.
일일상영 횟수와 상영 일수를 엄연히 적어야 하지만, 이 부분을 빈 칸으로 두는 '고무줄 계약'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 류형진 /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원
- "관객의 반응을 본 이후에 결정하는 게 가장 수익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계약 내용들을 정해 놓지 않고 가급적이면 탄력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게 극장에 유리한 방식인 거고..."
전국 영화 관객의 70% 이상을 끌어들이는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이 모두 이런 엉터리 계약서를 작성하고 조기 종영을 일삼았습니다.
반대로 흥행이 잘 되는 영화는 상영기간을 연장하고, 대신 계약 내용을 변경해 수익금 배분을 배급사에 불리하게 바꿨습니다.
지난 3년 동안 4대 멀티플렉스가 이런 방식으로 수익금 배율을 조정한 건수는 534편에 달합니다.
배급사와 상의 없이 영화 무료 초대권을 발행해 배급사 몰래 막대한 수익을 챙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배급사가 항상 약자이자 피해자인 것은 아닙니다.
배급사는 규모가 작은 중소형 영화관을 상대로 영화 상영 수익금을 하루 단위나 일주일 단위로 정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영화계에 만연한 이러한 불공정거래 관행을 적발하고 시정조치를 내렸습니다.
인터뷰 : 김원준 /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본부장
- "대형 멀티플렉스와 대형 배급사의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를 시정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질서가 구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해 온 한국 영화 산업.
윤호진 / 기자
- "오늘도 극장은 갖가지 흥미로운 영화들을 내걸고 관객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 좋은 시설을 제공하는 것 못지 않게 곪을 대로 곪은 영화 산업 내부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mbn뉴스 윤호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