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싱귤래리티(Singularity·특이점)’를 언급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말인데, 과학기술이 폭발적 성장단계로 도약해, 인간 본연의 생물학적 조건을 뛰어넘는 새로운 문명을 낳는 시점을 뜻한다. 그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뉴 비전’의 핵심 용어로 이 단어를 쓰며 관심을 끌었다.
손 회장은 240억 파운드(약 35조 4000억원)을 들여 영국 반도체 회사 ARM을 인수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와 함께 1000억 달러(약 113조 4000억원)을 조성하는 등 전대미문의 빅딜을 성사시키며 거침없는 행보를 하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AI)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싱귤래리티’가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것은 인류에 정말 큰 기회라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는데) 1000억 달러 펀드도 적다”고 말했다.
싱귤래리티라는 말은 원래 수학계에서 쓰던 용어였다. 일반적 이론이 통하지 않는 지점을 뜻한다. 이후 물리학으로 넘어가 중력장이 비정상적으로 무한히 뻗어 나가는 점을 가리킬 때 쓰였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괴짜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가 활용해 유명해졌다. (그는 올해 68세인 노학자다.) 커즈와일은 2005년 출간한 저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기술적 특이점’ 즉, 싱귤래리티 도래를 주장했다. 이 책에서 커즈와일은 싱귤래리티를 일반 과학에 적용시켜 ‘과학 기술 빅뱅 시점’으로 봤다. 그에 따르면 앞으로 30년 후인 2045년 경 인류는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가 출현하는 이 특이점에 도달한다.
지금 보면 말이 안되는 것도 많다. 커즈와일은 일단 2020년이 되면 진단의학기술이 극적으로 발전해 기대 수명이 150살까지 늘어나고, 2030년에는 질병과 노화과정을 첫 단계부터 예방하거나, 극도로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대부분 문제를 해결하면 1000살 수명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등 현재로선 다소 황망한 주장을 펼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커즈와일은 상상에만 그치는 망상가는 아니었다. 싱귤래리티를 준비하기 위해 직접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지난 2008년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을 설립했다.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커즈와일이 주장한 싱귤래리티 시대가 다가옴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미 항공우주국(NASA)과 구글, 노키아 등 글로벌 기관과 기업들이 후원한다. 우리나라에선 최초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 씨가 이 대학을 졸업했다. 정식 학위를 주는 대학은 아니지만 수업 일정은 대학원 과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살인적이라고 한다. 커즈와일은 10가지 필수 전공중 ‘미래학’을 직접 강의한다.
커즈와일 이후 싱귤래리티라는 용어는 더 이상 과학계에만 머물지 않고 문화예술과 심지어 PC게임까지 퍼져나가 널리 쓰이게 됐다. ‘투모로우’ ‘인디펜던스 데이’ 등 재난 영화 거장으로 꼽히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도 이 말에 꽂혀 있다. 그는 5년 넘도록 싱
[오찬종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