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같은 용량의 당(糖) 성분을 함유했다고 가정을 했을 때, ‘딱딱한 사탕과 말랑한 젤리’ 중 어느 것이 더 달게 느껴질까?
같은 맛을 보유한 식품도 음식의 굳기 등에 따라 선호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맛을 느끼는 감각과 굳기을 느끼는 감각은 분명 별개로 작용한다. 하지만 여러 감각이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여 풍미(風味)를 형성하게 되는지에 대한 원리 연구는 아직 미개척 상태이다. 다양한 감각들의 상호작용 원리의 단초를 제공한 이번 연구는 인간 인지기전의 기초자료가 될 뿐 아니라 향후 식품 및 의료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전망이다.
연세대 치과대학 구강생물학교실 문석준 교수팀은 최근 ‘음식 굳기와 맛인지 상호관계 규명(Mechanosensory neurons control sweet sensing in Drosophila)’ 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 IF = 11.329)’에 게재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팀은 음식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감각 중 음식 굳기 정도와 맛 인지의 상호관계를 초파리 실험으로 알아봤다. 초파리는 굳기를 인식하는 기계적 감각과 맛 감각에 대한 신호전달 연구가 용이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연구팀은 회당 약 40여마리의 초파리를 사용하여 수차례에 걸쳐 선호행동 양태를 반복 측정했다. 먼저 연구팀은 초파리가 딱딱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행동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평평한 실험접시의 공간을 2등분하여 우무형태의 배지 위에 당성분 용액 농도를 달리하여 떨어뜨린 후 한쪽 우무형태 배지의 경도를 점차 부드러운 상태에서 딱딱한 상태로 변화시켰다. 실험 초기 같은 굳기의 우무형태 배지 상태에서는 초파리들이 조금 더 당성분이 강한 배지 쪽으로 몰렸지만 점점 배지 경도를 높여 갈수록 조금 덜 달더라도 부드러운 반대편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보였다.
반대로 실험 시작 시기에 같은 경도의 배지였을 때 당성분이 강한 배지에 몰려있던 초파리들은 반대편 배지가 점차 부드러워짐에 따라 당성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부드러워진 배지 쪽으로 이동했다.
연구팀은 경도가 차이 나더라도 당성분의 함유량에 차이가 크다면 초파리의 선호도가 변화한다는 점도 실험으로 밝혀냈다. 연구팀은 배지의 경도를 10배 차이로 조성하고 더 딱딱한 배지 쪽에 반대편보다 10배 더 달콤한 당 성분을 제공했다. 그 결과, 같은 당성분이었던 실험 초기에 부드러운 배지 쪽을 선호하던 초파리들이 경도의 차이를 극복하고 더욱 당성분이 높은 배지 쪽으로 옮겨가는 결과를 보였다.
한편, 연구팀은 초파리가 물성을 인식하는 촉각신경이 자극을 받아 활성화되면, 같은 농도의 당성분을 제공하더라도 단맛을 느끼는 정도가 저하된다는 점도 밝혀냈다. 연구팀은 초파리의 촉각신경 활성화 정도를 ‘온도’를 매개로 삼아 조절해봤다. 그 결과, 21℃의 상태에서는 당성분에 대한 인지도가 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증가했다. 하지만 31℃로 환경 변화를 주어 초파리의 촉각 신경을 활성화시켰을 땐 같은 농도의 당성분에 대한 인지도가 급격히 저하됐다.
문석준 교수는 “초파리 행동 분석을 통해 음식 굳기가 단순한 기계적 자극 인지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함을 알게 됐다. 같은 단맛을 지닌 음식이라도 딱딱한 상태라면 미각기관의 기계적 자극 인지 신경세포가 음식 굳기 정보를 뇌에 전달하면서 단맛을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의 신호전달 기능을 억제해 선호도를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음식의 물성(굳기)와 맛 인지의 상관관계를 행동학 및 유전학적 관점에서 최신 이미징 기법으로 증명해 낸 이번 연구결과는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서로 다른 감각의 상호작용에 의한 풍미 형성’을 처음으
문 교수는 “이번 연구가 향후 다양한 감각의 상호작용 연구 수행의 토대가 될 것이다. 나아가 기호식품 개발에 적용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되기에 식품 및 의료 산업 개발에 기여할 여지가 크다”고 전망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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