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명가’를 구축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패션 부문에서도 빠르게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유통 ‘빅3’로 불리는 현대백화점그룹이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품에 안게되면 단숨에 패션 부문 ‘빅4’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탄탄한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현대백화점이 패션사업과 시너지를 확대할 경우 기존 패션업계에 가장 강력한 도전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핸대백화점은 이달 내 SK네트웍스의 패션부문을 인수하는 본계약 체결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과 SK네트웍스는 큰 틀에서 SK네트웍스의 패션부문을 현대백화점에 매각하기로 합의했으며 최종 가격을 놓고 세부조정 협상을 벌이고 있는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였던 SK네트웍스의 해외 브랜드 국내 판권 문제도 모두 해결됐다. 현대백화점 측이 직접 해외 브랜드 본사와 접촉해 SK네트웍스가 보유했던 판권을 현대백화점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다만 해외 브랜드 판권을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과거보다 수수료를 소폭 인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딜에 정통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에서 해외 브랜드 판권 수수료가 소폭 상승한 만큼 매각 가격을 일부 낮춰달라고 요구해 SK네트웍스 측이 마지막 검토를 하고 상황”이라며 “3000억원 안팎 수준에서 양사가 이달 내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이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인수하는 과정에는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패션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2010년 창립 39주년 기념식에서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 영업이익 2조원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시 현대백화점그룹의 매출은 8조5000억 원대에 불과했다. 유통사업만으로 10년 안에 매출을 2배 이상 늘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던 만큼 사실상 비유통 분야로의 공격적 사업확장을 예고한 셈이었다.
실제로 정 회장은 2년 뒤 인 2012년 패션기업 한섬을 인수했다. 당시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내에서 미국 브랜드 ‘쥬시꾸뛰르’를 수입판매한적은 있었지만 패션사업을 운영해 본 경험은 턱없이 부족했다. 패션업계 주변에서는 ‘실패한 M&A’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2013년 4708억원이던 한섬의 매출은 2014년 5100억원으로 급증하더니, 올해는 7000억 원대 중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도 2013년 503억 원에서 지난해 661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패션이 현대백화점그룹의 핵심사업 중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한섬을 통해 사업 다각화에 성공한 정 회장은 이번 SK네트웍스 패션부문 인수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을 패션명가로 도약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이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인수하면 패션업계 14위에서 4위로 순위가 수직상승하게 된다.
SK네트웍스는 오브제, 오즈세컨, 세컨플로어 등 자체 브랜드와 캘빈클라인, 타미힐피거, DKNY, 클럽모나코 등 해외 수입 브랜드의 판권을 포함해 총 13개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5657억 원이다. 같은 해 매출 6168억원을 기록한 한섬을 보유한 현대백화점이 SK네트웍스의 패션부문을 가져갈 경우 두 업체를 합친 매출은 1조1825억원으로 급등하게 된다. 코오롱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을 제치고 이랜드그룹, 삼성물산 패션부문, LF에 이어 업계 4위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이랜드, 삼성물산 패션부문, LF 코오롱,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빅5로 굳어진 패션업계 구도가 새롭게 재편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백화점이 패션부문을 강화하는 이유는 유통과 패션사업의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그룹에 인수될 당시 한섬의 매출은 4963억 원이었는데, 3년만에 매출이 24%나 증가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보유한 백화점, 홈쇼핑, 아웃렛, 온라인쇼핑몰 등에 한섬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 하면서 매출이 급증한 것이다. 이는 전통 패션 강자들이 실적부진을 겪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1년 전보다 6% 줄었고, 영업이익은 561억 원에서 90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LF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이 한섬 인수를 통해 유통과 패션사업의 시너지를 톡톡히 경험했기 때문에 SK네트웍스 패션부문 인수도 자신감 있게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패션시장에서 현대백화점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면서 패션업계 구도가 대대적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일선 기자 /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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