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운산업 재건에 빨간불이 켜졌다. 현대상선의 2M 가입이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고, 설령 가입을 해도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해운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2M 가입에만 목을 매다 다른 대안을 준비할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2M을 구성하는 주축 중 하나인 머스크라인의 대변인은 전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현대상선을 동맹체에 받아들이지 않고 현대상선의 용선계약을 인수하는 등 제한적 협력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측은 “이날 저녁에도 2M 측과 가입 조건을 협상하기 위한 미팅이 계획돼 있다”고 반박했다.
해운 전문가들은 현대상선이 2M에 가입하더라도 실익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2M 측은 현대상선에 일주일에 2만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의 물동량만 배정하겠다고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주일에 2만TEU는 현대상선 입장에서 터무니없이 적은 물량이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아시아-미주노선을 한바퀴 도는 데 2주가 걸린다”며 “1만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4척이면 주당 2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이 보유하고 있는 1만TEU급 이상 컨테이너선은 10척이다. 2M 가입이 성사되더라도 2M에서 배정받는 것 이상의 물량을 자체적으로 끌어와야 보유한 대형 선박을 모두 채울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한진해운 사태로 화주들의 한국 해운업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영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해운업계 원로는 “한진해운의 롱비치터미널이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조차 포워딩업체(화주와 해운사를 연결해주는 물류대행업체)들로부터 한국 해운업체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들려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해운 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이 몰락한 뒤 제1의 국적 원양선사가 된 현대상선이 불확실한 2M 가입을 위한 업무협약(MOU)만 믿고 대안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한 교수는 “국제 물류업계에서 MOU는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며 “현대상선은 다른 해운동맹에 가입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현대상선은 2M 측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왔다. 2M 가입 무산설이 수 차례 제기됐지만 그 때마다 현대상선은 “2M 이외의 다른 대안을 고려치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2M의 요구로 선대 확장에도 나서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다른 해운동맹에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2M의 대안이 될 수 있었던 디얼라이언스는 이미 화물운송계획을 다 짰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현대상선이 경영 정상화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상선조차 무너지는 것을 막고 이 회사를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적 원양선사로 키우려면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한 교수의 생각이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의 선복량(약 46만TEU)이 몰락 이전 한진해운(약 70만TEU)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투자하고, 국내 기업들은 현대상선에 화물운송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을 지원하는 데 대한 반발에 부딪칠 수 있지만 한 교수는 “현대상선마저 무너지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당장 동아시아 해역의 모항 역할이 부산항에서 일본 도쿄나 중국 상하이로 넘어가면 국내 수출기업들의 물류비 부담이 늘어난다. 모항은 주변 항구의 화물을 모아 큰 선박에 실어 원양 노선으로 보내는 항구를 말한다.
국내 기업들은 부산항이 동아시아 해역의 모항이었던 덕에 수출화물을 바로 원양 선박에 태울 수 있었다. 한 교수는 “유럽노선은 중국 상하이가, 미주노선은 일본 도쿄가 각각 동아시아 해역의 모항 역할을 가져갈 것”이라며 “컨테이너 1개당 상하이와 도쿄로 보내는 운송비는 각각 300달러와 700달러”라고 설명했다. 컨테이너 1개에 들어가는 물품가액이 평균 3만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업이익률이 1~2.3% 줄
한 교수는 “국가적 지원을 해줘도 현대상선이 몰락하지 전의 한진해운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10년이 걸릴 것”이라며 “현대상선마저 무너지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글로벌 해운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적선사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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