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계란 코너 |
서울 잠실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양모(64·송파구 거주)씨는 울상을 지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들을 봐주고 있다는 양씨는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러 온 길이었다.
양씨가 한참을 살펴보다 집어든 계란 15개들이짜리 가격은 4950원. 한판을 사게 되면 1만원에 육박한다. 예전에는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 유정란도 사먹였다는 양씨는 “정말 요즘 계란 값이 턱없이 올랐다”며 “일주일에 (계란) 한 판은 거뜬히 먹는 아이들인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오른 라면 가격 안내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김모(74)씨는 “집에 할인 쿠폰이 있는데 깜박 잊고 들고 오질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이 오르니 그런 것도 다 아쉽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계란에 이어 빵과 라면, 맥주 등 식품 가격이 잇따라 오르면서 장바구니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풀루엔자(AI) 사태까지 겹치며 계란은 물론 닭고기 등의 가격도 오를 조짐이어서 연말을 맞은 서민들은 우울하기만 하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오는 27일부터 하이트와 맥스 등 모든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33% 올린다. 오비맥주는 이미 지난달 카스와 프리미어OB, 카프리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 인상했다. 각 맥주회사들은 가격 인상에 연말 술 소비가 혹시나 위축될까봐 300원 가량의 할인쿠폰을 대형마트 판매 코너에 함께 배치해놨다. 계산시 해당 쿠폰만 제시하면 그 즉시 할인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대형마트 한 직원은 “예전에는 (할인 쿠폰을) 놔둬도 손님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요즘은 잘 챙겨가는 편”이라며 “술도 그냥 집는게 아니라 이것저것 고르는 눈치고, 가격이 아직 오르지 않은 수입 맥주 등을 주로 사가는 모습이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라면의 가격 인상은 농심이 지난 20일부터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 등 18개 품목 가격을 올리면서 신호탄을 쐈다.
주요 제품으로는 신라면이 780원에서 830원으로, 짜파게티가 900원에서 950원으로 각각 올랐다. 너구리와 육개장사발면도 50원씩 올라 각각 900원과 850원이 됐다.
이달 초에는 빵값도 올랐다. 파리바게뜨는 2년10개월 만에 193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6.6% 인상했다. 이에 따라 단팥빵이 800원에서 900원(12.5%)으로 올랐으며 롤 케이크는 1만 원에서 1만1000원(10%)이 됐다. 지난달에는 코카콜라가 콜라와 환타 가격을 평균 5% 인상하기도 했다.
AI 확산에 따른 ‘계란 대란’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닭고기 가격 역시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산란계(알 낳는 닭)와 달리 육계(식용 닭) 농가에서는 AI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방역 조치 여파로 농가 절반이 사육할 병아리를 새로 들여오지 못해 공급량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한우 가격 급등으로 인기를 모았던 미국산 소고기 가격도 크게 오르며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더욱 팍팍하게 한다. 2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일 기준 미국산 불고기(냉장 100g) 가격은 2980원으로 한 달 전보다 38.4% 뛰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등에서 하는 반짝 할인 이벤트 시간에 맞춰 쇼핑을 하거나 마트 회원 가입 등을 통
양 씨는 “남편이나 자식들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소비자 물가만 치솟아 큰 일”이라며 “사정이 어려워진 업체들이 가격을 올린 후 다시 사정이 좋아져 (값을) 내렸다는 얘긴 한 번도 들어보질 못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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