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3일 찾은 전북 군산시 소룡동의 국가산업단지. 인적을 찾기 어려운데다 차량도 10분에 한 두대 꼴로 지나가 마치 유령도시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군산조선소 폐쇄하면 군산경제 다 망한다', '조선소 폐쇄하면 5000명 근로자는 어디로'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공단 여기저기 내걸려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이날 군산이 지역구인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 등은 일감 부족으로 폐쇄 위기에 처한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의 폐쇄를 막고 지원을 촉구하는 전북도민 30만명의 서명부를 야당에 전달하기도 했다.
군산이 조선업 불황의 된서리를 맞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수주 가뭄에 시달리면서 협력업체들 역시 일감을 찾지 못해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업체들도 업종 변경을 모색하며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현대중공업의 1차 협력업체인 JY중공업이다. 이 업체는 선박 조립용 블록을 만들어 현대중공업에 납품했었다. 하지만 이날 찾은 축구장 14개(9만9000㎡) 넓이의 공장은 대부분 텅 비어 있고, 작업하는 직원도 20명이 채 안됐다.
이 회사의 임남원 전무는 "지난해 초만 해도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650여명이 공장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150명이 채 안된다"며 "절단작업과 용접작업 때문에 바로 옆 사람 얘기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공장이 시끄러워 수신호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지금은 멀리서 말로 해도 다 들릴 정도"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정확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군산에서는 군산조선소 폐쇄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도 "올해 상반기 군산조선소에서 만들고 있는 선박의 건조가 모두 끝난다"며 "그 때까지 추가 수주가 없다면 일감도 없는 공장을 열어둘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철수가 현실화되면 군산 지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2만 6000여명이던 군산시 근로자 가운데 조선업 근로자 수는 6300여명으로 24%를 차지한다. 기업체 수는 1120개 중 151개로 비중이 13.4%에 달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OCI 등 대기업 공장들이 입주해 있지만 이들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업황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부진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OCI 군산 공장에서는 태양광 모듈 제조 원료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하고 있으나 태양광 발전 수요가 감소하는 추세다. 2013년 유럽 수출물량이 많았던 한국GM 군산공자은 쉐보레 브랜드가 유럽에서 철수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다만 신형 크루즈 생산이 시작되면서 그나마 활기를 띄고 있다.
군산시가 기대했던 새만금 사업의 진척도 예상만큼 속도를 못 내면서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서울의 3분의2 면적인 409㎢의 국토를 새로 만드는 새만금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으로 불린다. 2020년까지 전체 개발 면적의 72%가 매립돼야 하지만 현재 속도대로라면 약 30%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투자도 점차 철회되는 추세다. 삼성은 2021년부터 7조6000억 원을 들여 '그린에너지 종합산업단지'를 구축하겠다고 밝혔고, OCI도 1조8000억 원을 투자해 폴리실리콘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두 프로젝트 모두 사실상 무산됐다.
이런 상황은 곧바로 지역 경기로 연결되고 있다. 이날 찾은 산업단지 인근 20석 규모의 한 백반집은 점심시간인데도 한산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끼니 때마다 공장 직원들과 공장에 자재를 실어나르는 트럭 운전사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매출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면서 함께 일하던 종업원 2명도 내보냈다. 식당주인인 김진호씨(58·가명)는 "나도 공장 근로자로 일했지만 최근 실직해 아내를 돕고 있다"며 "식당마저 파리가 날리니 막막하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조선업 불황의 그림자는 거제와 울산에도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1만4000여명의 직원 중 1500여 명을 내보냈고 올해 추가로 40%를 더 감축할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2015년 30% 감축에 이어 지난달에는 부서의 22%를 감축하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했다. 재작년 5331명이던 체불임금 근로자수가 지난해 10월말까지 1만1002명으로, 체불액은 같은 기간 219억원에서 498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젊은층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외지로 떠나면서 거제 인구는 지난해 7월 25만7483명에서 11월 25만7208명으로
울산의 경우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정규직은 3000명 이상, 비정규직은 1만2000명이 실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 11월 실업률은 3.9%로 증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 이승훈 차장(팀장) / 판교 = 김동은 기자 / 군산 = 우제윤 기자 / 서산·평택 = 문지웅 기자 / 구미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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