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사상 초유의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했다. 삼성 역사상 그룹 총수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자체가 처음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될 경우 그룹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3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그룹을 이끌어왔다.
그룹내 계열사 사장단들이 개별사업들은 챙기지만 그룹을 총괄하는 사안이나 대규모 투자결정은 이재용 부회장의 손을 거쳤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최지성 실장(부회장)이 주요 의사결정을 비롯한 그룹 내부 살림을 챙기고, 장충기 실차장(사장)이 대외활동을 총괄하며, 이 부회장이 핵심사안에 대해선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재계 총수 회동 같은 대외활동은 물론 그룹의 핵심 현안들을 직접 챙겨왔다. 삼성그룹의 화학부문 매각이나 국내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규모인 미국의 하만 인수가 모두 이 부회장의 결심을 거쳤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맞닥뜨릴 가장 큰 문제는 이 부회장이 없는 경우를 상정한 비상플랜이 없다는 사실이다. 재계 한 임원은 "그룹 오너의 부재를 가정한 경영계획을 만든다는 건 사실 오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따라서 이런 비상플랜을 미리 만들어놓는 그룹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삼성은 창사 이래 한번도 총수의 부재를 경험한 적이 없다.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전두환의 일해재단 및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가 안되거나 불구속기소 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수사때도 이건희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총수의 부재 자체가 사상 초유의 비상사태라는 얘기다.
그룹의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이 불구속 수사를 받게 되긴했지만, 특검 수사와 재판에 발이 묶이긴 마찬가지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종전처럼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이 역할을 분담해 비상체제를 가동시킬 순 있지만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이 없다면 컨트럴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면서 "여기에 이들 수뇌부 3인이 모두 특검의 수사 대상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는 없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당분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수사에 총력 대응해야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삼성 관계자는 "비상경영 조직은 삼성그룹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결정만 내리게 될 것"이라며 "미래를 결정지을 중차대할 결정들은 이 부회장이 돌아올 때까지 중단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장 올해 그룹 주요 업무계획이나 경영전략 수립 자체가 한없이 미뤄지게 됐고, 올해 3월 주주총회때까지 안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지배구조 개편이나 지주회사 전환건도 어떻게 될지 알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에서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제동이 걸린 하만 인수건이나 지난해 단종사태가 벌어진 갤럭시노트7 후속 전략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 등으로 빠르게 변하는 업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M&A나 신규투자 결정과 같은 미래먹거리 발굴은 물론이고 당장 올해 상반기 채용
다만 사업부별로도 일단 자체적인 전략에 따라 비상국면에 대처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권오현 부회장을 중심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총괄하고, 가전사업부문은 윤부근 대표가 무선사업부는 신종균 대표가 챙길 예정이다.
[송성훈 기자 /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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