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7년 설립돼 한때 선복(컨테이너 적재 공간)량 기준 세계 7위까지 올랐던 한진해운의 파산이 사실상 결정됐다. 한진해운 대신할 현대상선은 올해 글로벌 해운업계의 재편에서 살아남아 맏형으로써 한국 해운업계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다.
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전날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법원은 2주동안의 항고기간을 거쳐 오는 17일 파산선고를 내릴 계획이다. 해운업계는 이미 대부분의 자산을 매각한 한진해운에 항고기간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한진해운의 몰락으로 현대상선이 제1의 국적선사가 됐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8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현대상선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한진해운의 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하도록 한 뒤 세계 5위의 해운업체로 키우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하지만 해운업계는 정부의 장밋빛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대상선 역시 글로벌 해운업계의 장기불황 여파로 간신히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세계 5위는 고사하고 몰락 전 한진해운 수준의 해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는 게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해운업계는 상위 업체들을 중심으로 몸집 불리기 경쟁이 한창이다. 올해만 해도 초대형 인수합병(M&A) 3건이 예정돼 있다. 독일 하팍로이드(세계 6위·이하 선복량 기준)는 아랍에미리트해운(UASC·세계 10위)을, 덴마크 머스크(세계 1위)는 독일 함부르크수드(세계 7위)를 각각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일본 3대 해운사인 MOL·NYK·K라인도 올해 컨테이너 부문을 합병한다.
글로벌 해운업계 재편 작업이 한창인 상황에서 현대상선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박 확보, 신뢰 회복, 생존 등 3가지 숙제를 풀어야 한다고 한 해운업계 원로는 제시했다.
현대상선은 향후 3년동안 주력 노선인 아시아-미주 노선에서 선복량을 늘리지 못한다. 글로벌 1위 해운동맹인 2M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선대 확장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시아·구주 등 이외 지역에서는 선대를 확장할 수 있지만 선박을 늘릴 정도로 물동량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자금은 해결됐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으로부터 새로운 선박을 확보할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또 정부 정책으로 세워진 한국선박해양에 기존 소유 선박을 넘기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
화주와 해운업계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현대상선이 풀어야할 숙제다. 한진해운 사태로 해외 항만에서는 한국 해운업체를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다, 현대상선의 영업방식이 해운업계의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어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과거 동맹선사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운임을 낮춰 영업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관계자는 "루머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막했다.
무엇보다 해상 운임이 회복될 때까지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해운업계 재편으로 선복량이 줄어든 뒤 세계 경기가 살아나 물동량이 다시 늘어나면 이전까지 손실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은 사이클을 타는 산업"이라며 "호황 때 엄청난 이익을 남겨 현금을 확보한 뒤 불황으로 선박 가격이 떨어지면 선대를 확장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어 국가적 차원에서도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적선사는 꼭 필요하다. 현대상선마저 글로벌 해운업계에서 밀려나면 우리 수출기업들은 추가 운송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운업계는 이로 인해 수출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2~3%p 정도 떨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진해운이 버티고 있을 때는 부산항이 동아시아 지역의 모항(주변 항구의 컨테이너를 모아 큰 선박에 싣는 항구) 역할을 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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