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아들아. 네가 대학에 떨어진 것은 엄마 때문이다. 자식 머리는 엄마 닮는다더라."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재수를 선택했던 시기, 엄마는 힘들어하는 기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수능 점수가 엉망이었던 이유가 못난 엄마 탓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죄송스러웠다. 공부는 기자가 하지 않았을 뿐인데… 궁금했다. 길러주신 것도 모자라 부족한 학업능력의 원죄를 엄마가 짊어지려 하는 것일까. 겨울 방학이 끝나간다. 꿀맛같은 휴식을 맛본 학생들은 다시 교과서를 펴고 펜을 들고 문제를 푼다.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들도 조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알파벳을 외우고 덧셈 뺄셈을 한다. 아이들의 뇌 속 신경세포는 '학습'이라는 이름 아래 연결이 강화되면서 발달한다. 공부를 잘하고 못 하고는 결국 '뇌'의 문제다. 인류가 이제껏 쌓아온 다양한 연구를 학습에 응용해봤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교육열이 유독 심한 한국에서 부모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결론일지 모르겠다. 뇌 과학자들은 단언한다. 어렸을 때 많이 놀게하라, 그리고 부모와 아이가 정서적인 교감을 많이 나눠라.
1996년 7월, 의학학술지 '랜싯'에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됐다. 호주 헌터유전학연구소 연구진이 정신지체증이 나타나는 10개 가족의 가계도를 조사한 결과 IQ 분포도의 남자쪽 변이가 여자쪽보다 크다고 밝혔다. X염색체가 두개인 여자가 남자보다 유전자 손상을 물려받을 확률이 높고 지능 유전자가 X염색체에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하지만 이 연구결과는 자극적으로 포장돼 "자녀의 IQ는 엄마에게 물려받는다"라는 속설에 힘을 실어줬다.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모계에서 전달되는 유전자가 뇌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런 결과만을 토대로 단순히 "엄마가 똑똑해야 자녀가 똑똑하다"고 말할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김형준 한국뇌연구원 뇌질환연구부 선임연구원은 "입양아를 상대로 엄마와 아이 지능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엄마가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정서적 유대감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지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능과 연관있는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있지만, 현재 과학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어렸을 때 자녀와 부모간의 정서적 교감, 두뇌를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 등이 지능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덧붙였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이의 학습능력은 이미 결정된다는 속설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천재'라는 사람들의 경우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이 상당히 발달해있다. 뇌 발달과정을 보면 태어나서 3살까지 뇌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의 형성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6살까지 전두엽이 발달한다. 전두엽이 학습능력과 연관이 있다보니 어렸을 적 뇌 발달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속설이 힘을 얻었다. 한글도 못깨우친 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조기교육 열풍도 이같은 속설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아직 과학은 고차원적인 인지기능 발달에 있어서 최적의 시기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은정 한국뇌연구원 뇌신경망연구부 선임연구원은 "어린시기에 정상적으로 발달해야하는 일차적 기능이 발달되지 못한 경우 고차원적인 학습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기본 능력이 정상적으로 발달되어있다면 고차원적인 인지능력은 평생에 걸쳐 학습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고차적인 인지능력은 어린 시기에 획득되지 않더라도 향후 교육을 통해 증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뇌에서 얼굴을 인식하는 부위가 아동기에서 성인기를 거쳐 12.6%나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영식 한국뇌연구원 뇌질환연구부장은 "사람은 어렸을 때보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이 좋아진다"며 "뇌 성장은 어렸을 때 멈추는 것이라기 보다는 꾸준히 발달해 나간다"고 말했다. 3살 이전에 똑똑한 사람은 이미 결정된다라는 속설은 근거가 약해지고 있다.
한국 부모들이 교육열이 워낙 높다보니 학원가 등에서 뇌와 관련된 잘못된 지식을 근거로 '마케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좌뇌형, 우뇌형 인간이다. 좌뇌형은 수리논리력이 우수해 이과가 적합하고 반대로 우뇌형은 창의적인 만큼 문과를 선택하면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여러 학원과 강사들은 "좌뇌 우뇌로 구분해 학생들을 가르치면 효과적이다"라며 학부모를 유인한다. 절대 속아서는 안된다. 2013년 미국 유타대 연구진은 미국에 사는 7~29살 1011명의 뇌를 조사한 결과 어떠한 '편중성(뇌가 특정 기능에 의존하는 현상)'도 발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형준 연구원은 "1970년대 노벨상을 수상한 로저 페리 박사가 좌뇌와 우뇌를 잇는 '뇌량'을 절개한 뒤 관찰한 결과 좌뇌가 언어를 담당한다와 같은 가설을 세웠는데 이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학습능력을 좌뇌, 우뇌로 나누는 것은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과 같이 비과학적"이라고 말했다. "자고 있는 뇌세포를 깨워 학습을 증진시킨다"와 같은 말도 근거가 없다. 일반인은 뇌세포의 1%만을 활용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학설이다. 사람은, 뇌의 100%를 활용한다.
뇌의 발달과정을 토대로 미취학 아동에게 가장 좋은 학습법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뇌는 뒤통수에 있는 부위부터 앞쪽으로 점차 발달한다. 뇌의 뒷부분은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하며 태어날 때부터 어느정도 성숙되어 있다. 그 다음 '중뇌(편도체)' 부위가 발달을 하는데 인간과의 교감, 감성, 유대감 등을 담당하는 부위다. 이 부위가 적절하게 발달을 한 뒤 학습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한다. 이 부위 발달을 건너뛰고 무조건 학습 부위만 강화시키게 되면 뇌가 균형적인 발달을 할 수 없다. 소위 말하는, 공부는 잘 하지만 공감각적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공감능력, 유대감 역시 마음이 아닌 뇌가 작동하는 결과물이다. 똑똑한데 나쁜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이부분을 반드시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미취학 아동은 물론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과 '놀이문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휴식을 취한 사람의 학습능력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좋다는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은정 선임연구원은 "어렸을 때 보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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