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박 모씨는 최근 시험준비를 접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지방 출신인 박 씨는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전공 관련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공무원시험으로 눈길을 돌렸다. 박씨는 그러나 합격의 문턱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는 "그나마 학벌이나 학점을 중요하게 반영하지 않는 '공정한 시험'이라는 생각에 공무원시험에 도전했지만 경쟁이 너무나 치열했다"고 말했다. 알바몬 같은 구직 사이트를 통해 단기 시간제 일자리부터 찾고 있지만 대부분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단순 노동직 수준이어서 선뜻 취직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박씨는 "공무원시험을 그만 둔 건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기도 하지만, 그만 둔 이후에 찾아 나선 다른 보통의 삶도 만만치 않다는 현실이 정말 버겁다"고 토로했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취업준비자는 전년 동월 대비 8만5000명(13%)이나 증가한 73만5000명에 달했다. 올 들어 취업준비자 인구는 부쩍 늘어났다. 지난 2년 동안은 월별로 53만명에서 67만명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했다. 그런데 올 1월이 되자마자 69만명대로 급등하면서 증가세가 멈추질 않고 있다.
취업준비자들은 '첫 직장에 실패하면 그 이후는 더 힘들다'는 생각이 강하다.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를 감안할때 일단 중소기업에 취직해 경험을 쌓은 뒤 근로 여건이 더 좋은 기업으로 옮겨간다는 발상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얘기라는 발상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지난 2월부터 호주의 한 농장에서 사과따기 일을 하며 일당 10만원을 받고 있는 김현아 씨(27·여·가명)는 지난 2년간의 취업준비생 기억을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대학졸업후 2년 동안 '취업준비생'이라는 딱지를 달고 수십 차례 대기업 입사원서를 썼지만 번번히 좌절했다. 눈을 낮춰 보라는 주변의 조언에 한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손에 쥐는 건 150만원 남짓의 월급에 불과했다.
김 씨는 "호주 현지에 와 보니 비슷한 사연을 가진 한국인들이 많아 놀랐다"며 "정착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취준생 생활을 하고 싶은 손톱 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자는 엄밀히 말하면 실업자는 아니다. 취업준비가 '구직활동'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취업준비자는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된다. 하지만 구직 의사가 충만하고, 구직을 준비하는 행위 자체는 광의의 구직활동으로 볼 수 있어 이들은 사실상의 실업자다. 지난달 전체 실업자는 100만3000명이고 이 중 청년층(15~29세)은 41만9000명이다. 청년층이 거의 대부분인 취업준비자를 여기에 더하면 지난달 전체 실업자는 170만명, 청년 실업자는 110만명에 육박하게 된다.
취업준비자는 통상 졸업 시즌 직후인 3∼5월에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올해는 유독 증가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5월 취업준비자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취업준비를 위해 고시학원, 직업훈련기관 등에 통학하는 경우는 25만1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만8천명(7.9%) 증가했다. 통학을 하지 않고 자택 또는 인근 독서실 등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경우는 같은 기
서울 노량진에서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중인 이 모씨(28)는 "어설프게 첫 직장을 잡았다가 박차고 나올 바에야 처음부터 근로 조건 등이 맘에 드는 자리를 잡기 위한 준비에 매진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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