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늦깍이 취준생' 김 모씨(29)는 요즘 한숨이 버릇이 됐다. 8개월 전까지 서울 소재 한 정보통신(IT) 업체를 다니던 김씨는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과 넉넉지 않은 월급에 취업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하지만 두번째 도전은 녹록지 않았고, 모아둔 돈이 떨어지면서 김씨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밤샘 근무를 마친 뒤 짧은 낮잠으로 몸을 추스르고 곧바로 학원과 취업준비 스터디로 발길을 옮기지만 기운이 나지 않는다.
#경기도 광교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던 40대 가장 서 모씨(42)는 최근 호주로의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는 활황이라는데 신규 입주 지역에서마저 매출이 저조하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인건비는커녕 다달이 적자를 면키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호주에 자리잡은 선배의 이민 권유는 가뭄 속 '단비'였다. 서씨는 "주변에서는 자녀 교육 때문에 이민을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생계를 잇기가 어려워 졌기 때문이라고 말을 못 한다"면서 "한국에서처럼 사장님 소리는 못 듣겠지만 그래도 수입이 안정적이라고 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과 '사오정'(45세가 넘으면 정리해고 대상). 생긴 지 20년 가까이 된 이 단어들이 다시금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상 최악 수준의 실업난 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20대 청년과 40대 장년층의 취업자수가 뒷걸음질치고 있는 가운데 은퇴한 50·60대의 취업자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고용지표는 나날이 좋아지는 착시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자리의 '질(質)'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21일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3년 연속 증가세를 유지하던 20대 취업자수는 지난 7월 작년 같은 기간보다 1만 8000명 줄어드는 등 올 해 들어 두드러지게 악화되고 있다. 지난 1월(전년동월비 -2만명)과 2월(-1만명) 줄었다가 취업 시즌인 3월과 4월 각각 3만 4000명, 5000명이 소폭 반등했지만 5월(-1만명) 6월(-5만7000명)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청년들이 피부로 느끼는 고용시장 온도는 더 싸늘하다. 지난달 청년층(15∼29세) 체감실업률은 22.6%까지 치솟았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폭은 1.0%포인트로 월간 상승폭으로는 2015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세 번째로 높다. 취업 준비인구 증가폭도 지난 4월 2만명에서 5월 8만4000명, 6월 11만5000명, 7월 11만명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청년실업에 온통 이목이 몰려있지만 40대의 사정도 나빠지고 있다. 지난달 40대 취업자수는 1년 전보다 4만 8000명 쪼그라드는 등 지난해 9월 이후 무려 11개월 연속 줄어들고 있다. 1월 전년동월 대비 4만 4000명 줄어든 데 이어 2월(-2만 9000명), 3월(-4만 3000명), 4월(-5만 2000명), 5월(-6만 1000명), 6월(-3만 7000명)까지 마이너스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40대 인구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는 입장이지만 40대의 경우 취업자수 감소(-5만2000명)가 인구감소(-4만8000명)보다 컸다.
이와 달리 50대와 60대 이상에서 최근 5년간 매달 10~20만명 가까이 꾸준히 취업자수가 증가하면서 전체 취업자수 증가세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임시직·일시직 위주로 인건비가 싼 고령층의 고용이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용의 질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다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 급격히 늘면서 고령층 일자리 마저도 안심할 수 없다는 상황이 됐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100일을 기념한 대국민 보고대회 자리에서 "그래서 고용률과 취업자 수만 보면 최근 20년간 사상 최고치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비정규직 비율이 늘었고 청년 취업자 수는 2만명이 줄어 청년 실업률이 0.1% 높아졌다"며 "결국 고용은 늘었지만 주로 50대 이상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었고 청년이 취업할 만한 좋은 일자리는 준 것
한 민간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일자리 추가경정예산 등 고용 늘리기에 손발을 걷고 나섰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란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허리 격인 20대,40대 취업자수가 급감하는 것은 경제 체질이 약해지는 것"이라며 "청년과 중장년층에 대한 근본적인 실업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고용절벽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부장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