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석유개발업체들의 해저유전 개발 프로젝트가 재개되면서 수주절벽에 시달려온 국내 조선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가격을 내세운 중국 조선업체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아 우리 조선업계가 이를 뿌리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또 해양플랜트를 짓는 동안 국제유가가 다시 하락하면 발주처들이 다 만들어진 물건을 가져가지 않아 돈을 떼일 우려도 있다.
1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국 셰브론, 영국 로열더치쉘, 노르웨이 스타토일 등 글로벌 석유개발업체들은 최근 해양플랜트 발주를 다시 시작했다.
셰브론은 북해 로즈뱅크 프로젝트에 사용할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를, 스타토일은 요한 스베드럽 프로젝트에 사용할 2만1500t급 톱사이드(생산설비의 상부 구조)를 각각 발주할 예정이다. 쉘이 멕시코만 비토프로젝트에 사용할 부유식 원유생산설비(FPU)는 현재 삼성중공업과 중국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해양플랜트 발주가 재개된 이유는 국제유가에 있다. 1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 대비 2.2% 오른 49.30달러에서 거래를 마쳤다. 5주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석유개발업체들은 배럴당 50달러를 넘으면 해저유전을 개발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발주되기 시작한 해양플랜트를 수주하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가뭄 걱정을 덜 수 있다. 중국 업체들보다 기술력이 우위이기 때문에 우리 업체들의 수주 가능성이 높지만 중국의 자본 공세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국내 조선 빅3인 현대중공업·대우조선·삼성중공업은 프랑스 선사 CMA-CGM이 발주한 2만2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9척의 수주전에서 중국 조선업체에 밀렸다. 고부가가치 상선 영역까지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이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으로만 따진다면 해양플랜트 수주전에서 한국 업체들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면서도 "중국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해당 유전에 투자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영업하면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국제유가가 현재 수준에서 더 오를 수 있을지도 문제다. 지금 당장 해양플랜트를 수주해도 이를 다 짓는 몇 년동안 국제유가가 떨어져 유전개발 수익성이 훼손되면 발주처가 인도를 미룰 수 있어서다. 해양플랜트는 대부분의 건조대금을 인도시점에 받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계약되기 때문에 발주처가 인도를 미루면 해양플랜트를 짓는 원가도 건지지 못할 수 있다.
대우조선은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로부터 수주한 드릴십 2척을 지난해 완성하고도 아직까지 인도하지 못해 1조원 가량의 인도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몰린 대우조선은 지난 3월 결국 정부로부터 2조9000억원 가량의 추가지원을 받았다.
삼성중공업 역시 미국 선박회사 시드릴로부터 수주한 드릴십 2척과 계약해지된 드릴십 1척을 떠안고 있다. 시드릴과 삼성중공업은 지난 3월 말이던 인도시점을 늦추는 대신 인도대금 일부를 미리 정산하기로 하고 협상을 벌여왔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삼성중공업이 시드릴로부터 받아야 할 금액은 약 8000억원 수준이다.
현대중공업은 프레드올센으로부터 수주한 시추선 1척을 인도하지 못하고 계약해지를 당했다. 하지만 이미 손실처리를 끝냈다고 현대중공업 측은 설명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현재 발주되고 있는 해양플랜트는 대부분 생산설비라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설비는 발주처가 인도받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이 시추설비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며 "새로운 유전을 개발하는 데 사용하는 시추선과 달리 사용할 유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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