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양말은 좌판에서 '10개에 1만원' 주고 사는 물품으로 여겼다. 1990년대쯤만 해도 검은 양복과 구두 사이 흰 양말을 내보이는 게 경악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패션은 양말에서 완성된다'고 할 정도로 옷 좀 입는다는 이들 사이에서 양말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양말을 옷·신발과 얼마나 센스있게 매치하느냐를 통해 그 사람의 패션 센스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국내 프리미엄 양말 시장을 선도한 윤경수 니탄 대표를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 제공 = 니탄]
'양말=패션'이라는 공식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양말 사업에 뛰어든 이가 있다. 바로 윤경수 'CNYTTAN(니탄)' 대표(49)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SK텔레콤 TTL 광고 AE를 맡는 등 잘 나가던 광고쟁이였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양말 사업에 뛰어들게 됐을까. 서울 종로구에 있는 니탄 사무실에서 지난 9일 만난 윤 대표는 "당시 해외 신흥부자들은 양복 대신 양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는 점을 알아챘다"며 "한국에서도 조만간 양말 시장이 뜰 것이라 예측했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 후 2009년 양말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밝혔다. 양말이 단순히 쓰고 버리는 소비재로 그치는 것이 아닌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윤 대표는 다른 패션 소품에 비해 양말이 패션 아이템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고정관념을 깨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윤 대표와 그의 아내는 개성있는 스토리를 담아 양말을 직접 디자인했다. 패키징 역시 고급스럽게 제작해 '양말을 선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결과 갤러리아와 롯데, 신세계 백화점 입점을 비롯해 해외 수출 등의 성과를 냈다. 나아가 국내 프리미엄 양말 시장을 선도한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 양말브랜드 니탄이 제작한 고급 패션 양말. [사진 제공 = 니탄]
니탄이 이 같은 성과를 내자 SPA 브랜드를 중심으로 수많은 양말 업체가 생겨났다. 다른 아이템들보다 진입장벽이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외로 양말 제작 생산 규모가 크고 재고 처리도 만만치 않아 대부분이 시장에서 도태됐다. 윤 대표는 이 같은 흐름을 지켜보며 "니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양말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기 때문"이라며 "양말의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고 고민의 흔적을 담다 보니 1만원이 넘는 양말 가격에 대해 고객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급 양말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아 프리미엄 고객층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윤 대표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브랜드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CNYTTAN(니탄)'은 knit(짜다, 직조하다)의 고어로, 양말의 아주 근본적인 형태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인류 최초의 직물 또한 양말이라는 점은 그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본질에 대한 고민은 사람들의 양말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윤 대표는 기억에 남는 일화로 롯데 백화점에 입점하게 된 계기를 떠올렸다. 당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니탄 팝업스토어 행사를 보며 "왜 이런 브랜드는 롯데엔 없는 거야?"라고 말해 입점하게 됐다는 것. 또 루이비통 한국 지점장이 롯데백화점 입점을 진행한 담당 MD와의 미팅에서 신생 브랜드인 니탄을 착용하고 '최애 브랜드'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윤경수 니탄 대표가 신발을 벗어 자신의 양말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제공 = 니탄]
신선한 아이템으로 매년 2~3배의 매출 증가를 이뤄내고 있지만 윤 대표는 안주하지 않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그는 "단순히 양말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서비스 하겠다"라며 앞으로의 사업 구상을 밝혔다. 실제로 그는 올 9월부터 새로운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잡지나 신문처럼 양말도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도한다는 것. 정기 배송의 경우 재고를 예측할 수 있어 신청한 고객은 30~4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양말을 구매할 수 있다.
윤 대표는 양말 시장에 대해 "다른 패션 아이템의 경우 대표적인 브랜드가 있기 마련인데 유독 양말에 관해서만큼은 한국에선 대표 브랜드가 없다"면서
"하지만 분명 양말의 가치를 알아줄 시대는 온다"고 말했다. 이어 "니탄이 양말을 직접 디자인하고 가격보다 퀄리티를 우선하는 핸드링킹(발가락 부분의 굵은 심지를 없애기 위해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봉제하는 방식)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다"라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양현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