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조합에도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색 중에서 가장 대비가 심한 관계를 뜻하는 '보색'은 패션으로 승화시켰을 때 '패션 테러리스트'로 지적받기 십상이다. 보통은 비슷한 계열 색의 옷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색에 대한 편견은 없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이가 있다.
"색을 볼 때 편견이 없어야 하는 것이 제1원칙이죠. 노란색은 따뜻하다던가 보색 대비 색은 서로 안 어울린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진정한 '컬러리스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김민경 한국케엠케색채연구소 소장 |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케엠케색채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쉽게는 컬러리스트가 색을 만들고 제안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세계는 훨씬 더 정교하다"며 "색의 변화로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면서 상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고도화된 마케팅 감각이 있어야 하면서 매년 유행에 따라 트렌드 컬러를 제시할 수 있는 선구안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컬러리스트"라며 입을 열었다.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탄생하는 색의 종류만 700만 개가 넘는다. 이 중에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색의 가짓수는 약 250만 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색은 30만 가지 내외다.
김 소장은 "모든 색을 다 표현할 수 없다"면서 "또 같은 색이라도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색이 가져오는 인상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색을 연구하고 상품의 가치와 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화이트, 블랙 등으로 단조롭게 출시되던 가전제품에 색을 입혀 브랜드 가치를 올린 것 또한 그의 작품이다. 지난 2008년 한 제조사와 손을 잡고 파격적으로 레드 색상을 더한 김치냉장고를 제작했다. '가전제품은 튀지 말아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을 더해 상품의 이미지에 변화를 꾀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국내는 물론 유럽 등 해외시장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면서 "사양은 동일했으나 색상을 바꾼 것만으로 기존대비 30% 이상 이익을 내면서 상품의 가치를 올렸다"고 회상했다.
이외에도 립스틱에 펄이 들어간 색으로 제품 차별화 작업을 진행하거나 서울시와 협조해 지하철 9호선 자문위원회에 참가하며 도시의 색깔을 바꾸는데 일조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컬러리스트의 기량을 드러내고 있다.
시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김 소장이 처음(1993년 ) 국내에서 이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컬러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인지도가 없어 어딜가나 홀대받기 일쑤였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약 1300년 전부터 색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시를 세우거나 건축물을 관리할 때도 국가적으로 색채를 맞춰서 계획했다"면서 "사회·경제가 발전하고 자동차, 화장품 뿐만 아니라 가구, 소비재 등 일상생활에서 디자인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도 컬러리스트라는 직업이 각광받을 것으로 생각해 고군분투했다"고 말했다.
최근 20·30대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 진단도 색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방증 중 하나다. 이른바 '쿨톤(cool tone)'과 '웜톤(warm tone)' 찾기가 대표적이다.
김 소장은 "아무리 예쁘고 좋은 옷이라도 나에게 맞지 않는 색상으로 코디한다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자신의 색 분위기를 파악한 후 잘 어울리는 색의 계열을 찾게 되면 자신감도 높이고 호감도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문득 기자 본인의 색도 궁금해졌다. 김 소장은 ▲피부 ▲눈동자 ▲머리카락 등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쿨톤' 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퍼스털 컬러에 일종의 공식을 대입해서 강박적으로 매달릴 필요는 절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웜톤이 차가운 색상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고정관념"이라며 "파란색이라고 해도 따뜻한 느낌의 파란색이 있고, 보다 차가운 느낌이 드는 파란색이 있는 것처럼 베이스 색깔에 따라서, 또 같이 착장하는 액세서리를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가짓수는 다양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컬러리스트의 미래 전망은 어떨까. 김 소장은 4차 혁명 시대에 색채 연구가는 그 수요가 날로 증가할 것으로 확신했다.
"우리는 색채 한가운데서 색과 함께 생활하며 호흡하고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마치 공기가 없으면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것과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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