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화장품을 예물로 받으면 시집을 잘 갔다고 말한다.'
최근 북한 여성들 사이 회자되는 화장품 관련 얘기들이다. 특히 북한에서 한류 붐이 불면서 신랑이 신부에게 인기 있는 한국산 제품을 선물하는 혼수 문화가 더욱 확산됐다.
신부가 한국산 화장품을 선물 받으면 '시집 잘 갔네', 북한산 화장품을 선물 받으면 '보통이네', 중국산을 받으면 '고생문이 열렸네'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산 화장품을 치켜세운다.
당국 제재 속에 한국산은 포장지에 따로 표기하지 않고, 심지어 동남아시아산으로 둔갑해야 하지만 날개돋힌 듯 팔린다. 세계가 주목한 'K뷰티' 열기가 북한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 남한 화장품 북한서 언제부터 애용됐나
북한에서 한국산 소비재 사용이 확산된 시기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한의 각종 물자가 북한으로 지원되고 또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이 몰래 전파되면서 화장품 등 한국산 소비재 사용은 더욱 빠르게 퍼져나갔다.
북한의 조선중앙TV가 2013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업을 앞둔 주민 종합편의시설 '해당화관'의 화장품 판매장을 둘러보는 모습을 공개했을 때도 아모레퍼시픽의 '라네즈'가 수입 브랜드 로레알, 랑콤과 함께 포착된 바 있다.
실제 남한의 비비크림은 북한의 암시장에서 '없어서 못 팔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북한에서 '삐야'라고 불리는 비비크림은 남한 보다 자외선 강도가 높고, 찬바람이 강하게 부는 북한 지역 특성상 여성들의 피부 보호에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잘 팔리게 됐다.
북한의 추운 기후 탓에 기초 화장품이 인기인데 스킨은 '살결물'로, 로션은 '물크림', 나이트크림은 '밤크림', 영양크림은 '기름크림' 으로 통한다. 이외에 파운데이션은 분크림 혹은 피아스라고 불리며, 트윈케이크는 '고체분', 아이섀도는 '눈등분', 립글로스는 '입술화장품' 혹은 '구찌베니',립스틱은 '입술연지'로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북한 여성들이 즐겨 찾는 화장품들이다.
한국산 화장품 가격은 중국산이나 북한산과 비교해 2~3배 비싸다. 한국산 스킨, 로션과 같은 기초 화장품은 북한 화폐로 18만원 가량이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기능성 화장품들은 이보다 더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비싼 가격에도 한국산 화장품이 인기 있는 이유는 한국 사람과 비슷한 피부 체질을 가진 북한 사람들이 이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채수란 남북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북한 사람의 피부에는 서양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보다는 피부 체질이 유사한 한국 사람에 맞게 개발된 한국산 화장품이 적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
한국산 화장품은 북한 당국의 제재로 암시장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다. 포장 상자나 용기에 한국산 상표나 표기 'Made in Korea'는 당연히 제거되거나 지워진 채 사고판다. 판매자가 적발될 경우 보유한 화장품을 몰수당하거나 심지어 벌금을 내야한다. 위장 거래가 불가피한 이유다. 최근에는 한국산 상품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화장품 장사꾼들이 집에서 일대일로 거래하는 식의 방문 판매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가 쓴 책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을 보면 북한에서 한국산 제품 판매는 불법이기 때문에 아예 '동남아시아 화장품'으로 둔갑해 판매된다. 그러다보니 동남아시아 화장품은 곧 한국산 화장품을 의미하는 은어로 통하며 주민들 대부분이 한국산으로 인식하고 구매한다.
동남아시아 화장품으로 둔갑한 한국산 제품 포장 상자에는 영어로 상품명이 적혀 있다. 제품 상자 안에 한글로 된 사용설명서가 들어 있는 식이다.
유통업자들은 당국의 통제를 피하기 위해 세관을 통과할 때는 상자 안에 한글로 된 사용설명서를 넣지 않고 시장에서 판매시 설명서를 따로 넣는다. 꽤 수고로운 과정이지만 그만큼 한국산 화장품을 즐겨찾고, 진품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의 수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 고위층과 부유층 여성들 사이 더 인기
고가의 한국산 화장품은 북한 고위층 부인들에게 제공되는 선물이나 뇌물로 활용된다.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브랜드 같은 한국산 중에서도 최고급 품목은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북한 고위층과 부유층들이 애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는 세련된 외모와 스타일을 자랑하며 북한 여성들 사이 한 때 '리설주 따라하기' 열풍을 불러 모았는데, 그런 그가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를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설화수가 북한에서 인기라는 얘기는 들었다"며 "현재 우리가 직접 유통하고는 있지 않아 중국 쪽을 통해 들어가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2016년 2월 개성공단이 전면 가동 중단되기 전까지 입주업체 등 남측 기업이 북측에 선물한 한국산 화장품이 평양 고위 간부의 부인들에게까지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 화장품을 한번 사용해 본 고위층 부인들은 수입 담당 간부들에게 압력을 넣
갈수록 북한에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부유층 여성들 사이에서도 한국산 제품을 선물하는 혼수 문화가 확산되며 한국산 화장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모습이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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