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청과전문업체 스미후루코리아의 박대성(사진) 대표가 최근 다녀온 필리핀 출장 일에 관해 얘기했다. 한 달에 두 세번씩은 가는 해외 출장길이었지만 이번에는 남달랐다. 스미후루가 주최한 비즈니스 포럼에서 스미후루코리아의 성장세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스미후루는 싱가포르에 본사가 있으며 한국 필리핀, 일본, 중국, 에콰도르 등에 지사가 있다.
"아시아 각 지사에서 모이는 자리였어요. 바나나면 다 같은 바나나라고만 생각한 한국 시장에서 바나나 '맛'으로 승부를 봤으니 자부심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었어요. 매출 성장세도 특출났고요."
2004년 스미후루코리아 출범 첫 해 박 대표는 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창업 14년만인 지난해에는 1720억원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1900억원대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창업 15년만에 25배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한국 시장 성장세를 보고 아시아 곳곳에서 모인 스미후루 직원들은 "어메이징(Amazing) 코리아"를 연발했다.
스미후루코리아 대표가 되기 전 그는 다른 글로벌 청과업체에서 근무를 했고, 그를 눈여겨 본 스미후루 측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한국에서 처음 꾸려지는 스미후루코리아의 지사장 자리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인지도가 전혀 없는 브랜드인데다 신생업체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고 고심했다. 그러다 내린 결심,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4명의 직원을 뽑아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청과물 시장의 '큰 손'인 도매시장의 벽을 뚫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4명의 직원이 입사 한 후 한달 동안 일감이 전혀 없었다.
"속이 새까맣게 탔죠. 사무실도 없어서 커피숍에서 면접 보고 뽑은 직원들이었거든요. 일감마저 없으니 얼마나 이상한 회사라고 생각했겠어요. 과일 도매시장은 한번 진입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확보하면 안정적인 시장이에요. 기필코 뚫어야만 했어요."
박 대표가 직접 영업맨이 돼 뛰었다. 당시 도매시장에서 상인들이 알아주는 것은 돌이나 델몬트 브랜드였다. 거대한 도매시장을 움직이기 위해 소매시장부터 공략했다. 직원들은 동네슈퍼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스미후루 바나나를 맛보였다. "안 사도 좋으니 맛 한번 보시라"며 바나나 꾸러미를 두고 왔다. 맛조차 보길 거부하는 슈퍼 사장님을 위해선 짐 나르는 것을 도와주거나 때론 말벗이 돼 친밀함을 쌓았다.
"몇 년동안은 바나나 판매랑은 관계없는 듯한 영업만 했어요. 도매시장에선 투명인간 취급하고, 소매시장에선 문전박대 당했으니까요. 서러웠죠. 저도 그랬는데, 직원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의 공감 능력은 힘든 영업 일을 해야했던 직원들에게 위로가 됐다. 함께 아파하고, 솔선수범하는 박 대표를 보며 직원들은 버텼다. 그가 처음 채용했던 4명의 직원들은 여전히 그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 스미후루코리아 연도별 매출액 [표 제공 = 스미후루코리아] |
"스위트 마운틴 바나나가 정말 맛있거든요(웃음). 일반 바나나가 저지대에서 재배됐다면, 스위트 마운틴은 필리핀 고산지대에서 재배를 해요. 아침 저녁 큰 기온차를 견디며 자라다보니 당도는 일반 바나나보다 30%가 많고요, 영양가도 그만큼 많고 더 쫄깃하고요."
돌이나 델몬트 보다 떨어지는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상품 경쟁력 뿐이라고 생각한 박 대표는 바나나 맛에 '올인'했다. 제품 개발에 최소 4~5년은 걸렸지만 신제품 개발에 공을 들였다.
물론 사람의 입맛을 변하게 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제안해도 한번 길들여진 입맛을 변하게 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박 대표 스스로도 "창업을 한 후 4년간이 무척 힘들었다"고 얘기했다.
2010년부터 바나나 시장이 변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바나나의 맛을 따지기 시작했고, 프리미엄 바나나를 찾기 시작했다. 싼 바나나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 스미후루코리아가 선보인 감숙왕, 로즈바나나, 바나플, 풍미왕 등 다양한 맛을 지닌 바나나를 경험하게 한 덕분이었다.
"노란 색의 바나나가 겉 모습만 보면 다 비슷하게 생겼죠. 그런 바나나를 팔기만 하면 되지 뭘 그리 맛을 따지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세요. 소비자들 입맛이 달라졌잖아요. 6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소비자들 입맛이 이렇게 달라지고 다양성을 추구하기까지는요."
이렇게 소비자들의 입맛이 달라진 데에는 스미후루코리아 직원들의 노력이 컸다. '한 번이라도 더, 한 분이라도 더' 스미후루코리아 바나나 맛을 보게 하기 위해 발로 뛴 결과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공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 대표는 직원 복지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80여명의 직원들 모두에게 자기 개발비로 연간 100만원씩을 지원해 주는 한편, 직원들 간 화합을 위해 사내 동호회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동호회 회원들에게는 역시 1인당 월 5~10만원을 지원해 준다.
"축구, 골프, 당구, 볼링은 물론, 최근에는 방탈출 게임 동호회까지 만들졌더라고요(웃음). 힘든 시절을 다 같이 보내면서 생각해보니 그래도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도록 돕는 게 제일 필요하더라고요. 그게 사장인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추억을 안주 삼아 직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즐겨한다. 당연히 그러한 회식 날은 최고급 요리를 먹는 날이다. 회식 참석률 100%를 자랑하는 박 대표만의 남다른 비법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국내 바나나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스미후루코리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1인당 바나나의 연간 소비량은 8kg정도다. 전 세계에서 바나나 소비량이 가장 많은 뉴질랜드의 경우 1인당 소비량이 16kg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2배인 셈이다. 박 대표가 여전히 성장에
"인생에서 첫 커피 맛, 와인 맛 등은 쉽게 잊혀지지 않아요. 맛있는 바나나 맛도 그렇죠. 다양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취향을 사로잡기 위해 계속 노력할겁니다. 처음 스미후루 바나나 맛을 보는 이들을 위해 오늘도 처음처럼 일해야죠."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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