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것은 악연의 시작. 소리를 지르면 비상식적인 요구가 관철된다는 것을 한번 경험한 손님은 주기적으로 해당 면세점을 찾아 직원들을 괴롭힌다. '블랙컨슈머'의 학습 효과다.
박종태(사진) 한국감정노동인증원 원장은 면세점업계에서 직접 들은 블랙컨슈머의 사례를 생생히 들려줬다. 그리고 강조했다. "블랙컨슈머는 폭탄과 같아요.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할 존재이지 결코 떠안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라고 말이다.
박 원장은 악성 민원을 고의적이고 상습적으로 제기하는 블랙컨슈머의 목적은 단언컨대 '보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16년간 CS(고객만족) 부서 등 현장 전문가로 활약하며 다양한 유형의 블랙컨슈머를 접한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블랙컨슈머가 원하는 것은 기-승-전-보상이에요. 콜센터 직원들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단순히 클레임을 거는 고객인지 블랙컨슈머인지 헷갈려하는데요. 민원을 통해 금전적인 보상을 원한다면, 블랙컨슈머가 틀림없죠."
가령 이런 식이다. 공포 영화를 보고 나서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니 영화관 측에 이를 돈으로 물어내라는 것이다. 대형 마트에서 구입한 식품에서 이물질이 발견됐는데, 이 사실을 언론 등에 발설하지 않는 대가로 현금 1억원을 요구한다. 전자 제품을 산 후 트집을 잡고 협박을 해 보상금으로 2억원을 뜯어낸 경우도 있다.
박 원장은 블랙컨슈머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금전적인 중심의 문제 해결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은 SNS나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금전적 보상을 받은 블랙컨슈들이 습득하거나 경험한 정보가 쉽게 유통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기업과의 접촉을 통해 스스로 얻어낸 보상 등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데, 이는 또 다른 블랙컨슈머에게도 영향을 미쳐 기업 입장에선 예상치 않은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만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 [사진제공 = 한국감정노동인증원] |
박 원장은 블랙컨슈머가 욕을 하는 이유에는 직원의 감정을 흔들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국 얻어 내려는데 있다고 봤다.
"'밤길 조심해라', '잘리고 싶지? 원하는대로 해줄게',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던?', '네가 못 배워 거기서 전화나 받고 있는거야' 등 직원을 위협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말들이 정말 많아요. 블랙컨슈머가 흥분한 상태에서 내뱉는 욕설에는 일종의 전략이 숨어 있어요. 공포 분위기 속에 강한 욕설을 들은 직원들은 순간 이성적인 통제력을 상실하거든요. 블랙컨슈머가 흥분한 상태에서 내뱉는 욕설에다가 주위 시선을 생각하면 직원들은 블랙컨슈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죠. 그게 말이 되든 안되든 말이에요."
이러한 블랙컨슈머를 상대하려면 무엇보다 직원들이 흥분한 손님의 허점을 역으로 노려야한다고 박 원장은 강조했다. 화가 잔뜩 난 손님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되 '질문'을 던져 비이성적인 상태에서 이성적인 상태로 돌아오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블랙컨슈머들은 두루뭉술하게 자신의 불만을 얘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따라서 '저희 상품이 (혹은 직원이) 못마땅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불만이신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라고 질문을 하는 게 효과적인 응대 방법이에요. 감정적으로 화가 나 있는 블랙컨슈머에게 역으로 질문을 하면 그는 답을 하기 위해 이성적인 모드로 바뀔 수밖에 없어요. 한번의 질문이지만 그 효과는 분명히 클 거에요."
또 최대한 말을 아낄 것을 조언했다. 블랙컨슈머는 어떻게서든 기업의 허점을 노리기 때문에 이들과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꼬투리를 잡혀 이를 잡고 늘어질 가능성 역시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블랙컨슈머를 상대해야하는 직원들은 가급적 짧게 질문하고 정보 위주의 대응을 해야한다"며 "흥분한 상태에서 말을 많이 하게 되면 직원들 역시 감정이 개입될 위험성이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 = 한국감정노동인증원] |
"세상에는 반드시 필요한 업무를 하면서도 그에 따른 합당한 대접이나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고유한 색을 버린채 철저히 고객의 색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감정노동자죠."
다행히 지난해 10월 감정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감정노동자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그는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감정노동인증원에서 주관하는 감정노동관리사(감정노동과 관련해 개인은 물론 기업 입장에서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자격증) 시험 응시생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총 7회 치러진 시험에서 배출한 합격생만 1500명에 이른다. 각 기업들의 HR(인사관리) 담당자나 CS 관리자들이 응시생의 주를 이룬다.
↑ 감정노동평가사 시험을 보고 있는 응시생의 모습 [사진제공 = 한국감정노동인증원] |
감정노동에 대해 기업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있다. 블랙컨슈머에 대한 작업 중지권 부여 등 꽤 강경한 입장으로의 변화다. 그렇다면 블랙컨슈머는 사라질까. 1초의 망설임이 없이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 였다. 상품과 서비스가 있는 한 절대 사라질 수 없는 게 바로 블랙컨슈머라고 박 원장은 강조했다.
오히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좋고 싫음으로 구분짓는 것을 좋아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블랙컨슈머 대응은 더욱 어려워지고 복잡해질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더욱 구두끈을 조여맨다는 그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옳고 그름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저 내가 좋고 싫은 것이 많은 행동을 결정지어요. 내가 싫은 일에는 화를 참는 것조차 어렵죠. 이러한 밀레니얼 세대의 블랙컨슈머를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 역시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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