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입찰에 참여해 1등으로 낙찰됐는데, 돌연 '포기 각서를 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었다…."
이런 일방적인 횡포가, 그것도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정주영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 기자 】
지난해 940억 원의 정부 출연금이 투입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입니다.
그런데 최근 조달청 나라장터에 낸 입찰 과정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습니다.
MBN이 확보한 서류를 보면 해당 연구원은 1등으로 낙찰된 국내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으로부터 "계약 이행을 포기하고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습니다.
기존에 쓰던 외국산 소프트웨어가 아닌 국내 소프트웨어라는 이유만으로 포기 각서를 받아낸 겁니다.
입찰 공고나 규격서에는 외산을 찾는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해당 기업은 입찰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을 길조차 없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 인터뷰 : 김 모 씨 / 국내 벤처기업 팀장
- "낙찰이 됐음에도 나흘 만에 포기를 종용하는 것에 대해서 적절하지 않죠…. 일반경쟁 입찰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특정 외산제품이 내정된 상황에서 저희는 경쟁조차 할 수 없는…."
연구원 측은"연구원에서 요청하는 세부 규격과 국산업체에서 납품 가능한 규격이 상이해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국내 중소기업 제품 의무구매 비율 제도는 권고사항에 불과해 정작 현장에서는 외면받는 게 현실입니다.
▶ 인터뷰 : 황보윤 / 국민대 글로벌 창업벤처대학원 교수
- "합격을 시켜놓고 안 된다고 하는 건…. 사람을 뽑아놓고 이 사람은 아니라고 하면, 요즘 같은 시절에 어떻게 이걸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심각한 문제라고 봐야죠."
공공기관이 외산 소프트웨어를 선호하는 사이에 매년 1조 원에 육박하는 로열티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MBN뉴스 정주영입니다. [jaljalaram@mbn.co.kr]
영상취재 : 박인학 기자, 현기혁·홍현의 VJ
영상편집 : 이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