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경덕 논설실장 |
10년짜리 미국 국채는 아직 연 2% 수익을 보장한다. 하지만 올해 물가 상승률이 2%라면 실질금리는 제로다. 이자로 구매력을 늘릴 수 없다. 한국 국고채 10년물 수익률은 1.4%다. 아직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는 아니다. 하지만 웬만한 거부가 아닌 한 이자만 따먹으며 살아가기는 힘들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6년에 펴낸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자본소득자의 안락사(euthanasia of the rentier)를 이야기했다. 자본이 많이 쌓일수록 수익률은 떨어지고 결국 자본소득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사라지는 걸 상상한 것이다. 케인스는 이들이 서서히 죽어가면 혁명 같은 건 필요 없을 거라고 했다. 그 상상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지금은 확실히 자본이 넘치는 시대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순자산은 1경5511조원으로 GDP의 8.2배에 달했다. 국민순자산은 토지와 건물, 생산설비를 비롯한 넓은 의미의 자본 총액을 말한다. 국민순자산은 환란 직전까지만 해도 GDP의 6배 남짓한 수준이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GDP 성장에 비해 자본이 더 빠르게 축적된 것이다. 그만큼 자본의 수익률은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실세금리는 2000년대 들어서도 5%를 웃돌았다. 지금은 1%대 중반이다. 성장의 활력과 자본의 수익률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이런 때에는 안정된 소득을 얻는 월급쟁이들 몸값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금리가 5%일 때 채권에 10억원을 투자한 이들은 연봉 5000만원과 맞먹는 소득을 얻었다. 금리가 1%로 떨어지면 50억원을 가져야 그만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배당이나 임대소득을 얻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금리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시세차익(자본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익은 자산을 팔아야 실현할 수 있다. 이자나 집세를 받아 생활하는 은퇴자에게 미실현 이익은 언제든 사라져버릴 수 있다. 교육을 잘 받고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가진 젊은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미래소득을 현재가치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금리(할인율)가 떨어지면 그의 현재 몸값은 올라간다. 은행은 그에게 기꺼이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려줄 것이다.
자본소득자들은 안락사를 피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0.1%라도 높은 수익률을 좇아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대형 증권사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지구촌을 헤매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업들은 한사코 해외로 빠져나가려 한다. 상황은 이렇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과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과거 자본의 수익률이 높았던 건 그만큼 자본이 희소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자본이 넘치는 시대에 희소한 건 창조적 두뇌뿐이다. 두뇌는 토지나 생산설비, 금융자산 같은 전통적인 자본과는 다르다. 하지만 생산 수단이면서 소득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자본이다. 두뇌자본은 국부 통계에도 기업 대차대조표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두뇌야말로 21세기 지식 기반 경제에서 가장 값진 자본이다.
두뇌자본은 어떻게 축적하는가. 무슨 수를 쓰든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고 혁신의 용광로에 불을 지피는 길밖에 없다. 기업과 대학과 도시는 글로벌 인재와 자본을 끌어모으는 혁신 클러스터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그런 클러스터가 한번 만들어지면 기업과 인재는 좀처럼 그곳을 떠날 수 없다.
정부는 안락사의 운명을 피하려 필사적인 자본에 활로를 활짝 열어줘야 한다. 지금처럼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실물경제의 투자는 늘지 않는다면 그 귀결은 뻔하다. 자산시장의 투기적 거품만 키웠던 돈이 생산적인 분야로 흐르도록 확실
[장경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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