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함에 따라 일본산 탄소섬유, 보톡스, 디젤엔진 등의 수입까지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이들 품목은 자동차, 화장품, 선박 등에 널리 쓰이는 소재나 부품이지만, 1차 타깃이었던 3개 반도체 소재처럼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이어서 일본이 국가 안보를 핑계로 수출통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목됩니다.
오늘(6일) 전략물자관리원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업계를 대상으로 이뤄진 일본 수출규제 설명회에서 정부는 업종별 주요 수출통제 대상 품목을 안내했습니다.
앞서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전략물자 1천194개 중 상대적으로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159개를 집중관리 품목으로 지정했습니다.
업종별로는 화학 40여개, 반도체와 기계 각 20여개, 금속 10여개 등이 포함됐습니다.
집중관리 대상에 가장 많이 포함된 화학 분야의 경우 탄소섬유·불화수소(HF)·청화소다(NaCN)·불화나트륨(NaF)·오황화인·트리에탄올아민 등 전구물질과 반응기·열교환기·펌프·밸브·증류탑 등 화공설비, 탄소섬유·폴리이미드 등 화학재료가 수출통제 우려 품목에 들어갔습니다.
전구물질은 화학물을 합성하는 데 필요한 재료가 되는 물질, 화공설비는 화학물질 제조 장비, 화학재료는 화학합성물을 말합니다.
일본이 지난 달 4일 1차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했던 불화수소의 경우 맹독성 신경가스로 알려진 사린가스의 합성원료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불화수소는 기존 포괄허가는 물론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4개국처럼 일본 자율준수프로그램인정기업(CP) 기업과 거래 시 허가되는 특별일반포괄허가도 받을 수 없습니다.
흑색화약의 원료인 오황화인은 신경작용제인 아미톤(VX)의 합성원료이기도 합니다.
이 물질은 전략물자 비민감품목으로 백색국가에 한해 일반포괄허가가 허용됐지만 한국의 비백색국가로 바뀌면서 개별허가를 받거나 CP기업을 통해 특별일반포괄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화장품 산도를 조절하는 데 쓰이는 트리에탄올아민 역시 수출통제 대상 품목으로 꼽힙니다.
화공장비는 펌프류, 반응기부터 증류탑, 열교환기, 저장탱크, 밸브류까지 다양한 품목이 통제 대상에 들어갑니다.
그동안 전략물자 비민감품목으로 일반포괄허가만 받으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지만, 한국이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서 개별허가나 특별일반포괄허가 대상으로 전환됩니다.
탄소섬유는 한국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자동차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소재입니다. 하지만 미사일 동체에 쓰이는 화학재료이기도 해 일본이 규제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일본이 탄소섬유의 대한국 수출을 제재할 경우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차(FCEV)인 넥쏘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넥쏘의 수소탱크를 공급하는 일진복합소재는 수소탱크의 원료인 탄소섬유를 국내에서 조달해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화학 다음으로 집중관리 대상 품목이 많은 기계 분야에서는 공작기계, 밸브, 펌프, 열교환기, 선박용 엔진 등의 수출이 난항을 겪을 수 있습니다.
기계부품 가공에 필수적인 터닝·밀링·연삭기는 무기류나 핵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데 쓰일 수 있어 이중용도로 지정된 품목입니다.
워터젯, 전자빔, 레이저 등 복합재료가공기기도 수출통제 대상에 들어가 있습니다.
가스터빈엔진이나 디젤엔진 등 자동차·선박용 엔진은 군용차량 및 구성품 통제기준에 따라 타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기·전자업종에서는 반도체 재료이자 발광다이오드(LED) 재료용 기판으로 쓰이는 다층막 헤테로적층 기판과 폴리이미드 제조품, 광섬유 등의 대한국 수출이 까다로워질 수 있습니다.
스위치, 라우터(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와 같은 네트워크 장비, 무선랜, 레이저 등 정보보안기기나 적외선 센서, 열화상 카메라 등도 수출통제 대상입니다.
이외에 바이오·화장품 업종에서는 미생물 관련 수출 제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흔히 '보톡스'라고 불리는 보툴리눔 독소 생산 균주 등 박테리아 22종, 황열·두창 바이러스 등 바이러스 59종, 독소 및 그 하위단위 16종, 식물병원균 19종, 유전자가 변형된 생물 및 유전 요소가 그 대상입니다.
다만 미용시술에 많이 쓰이는 보툴리눔 독소의 경우 의약 제형품이나 임상 또는 의약품으로 배포하기 위해 미리 포장된 것, 임상 또는 의료용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당국의 승인을 받은 것은 제외됩니다.
배양체 선별, 생산, 회수, 안정화, 시험, 살포를 위한 생물 장비류와 보호장비를 규제할 수도 있습니다.
거의 전 산업에 걸친 일본의 수출규제가 가시화되자 정부는 어제(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100개 핵심품목의 조기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세제, 예산, 금융, 입지 등
100개 핵심품목에는 집중관리 대상 품목과 한국 산업에 필수적이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 포함됐습니다.
전략물자관리원은 "일단 일본의 CP기업과 거래하면 기존의 포괄허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이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일본의 조치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