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인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회장직을 이어 받으며 경영권 승계 준비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항상 이같은 얘기를 주변에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70세가 되던 1995년 2월 장남이었던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함으로써 재계 첫 무고(無故) 승계라는 선례를 만들었다.
구인회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1970년부터 1995년까지 25년 동안 LG그룹의 2대 회장으로 재임한 구 명예회장은 한국의 기업 LG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업인이었다. 또한 확고한 철학과 소신으로 70세에 용퇴하고 다음 세대에게 길을 열어준 '참 경영인'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지수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47년부터 부친을 도와 LG그룹을 일으켰다. LG의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사(LG화학)가 럭키크림 화장품 사업이 날로 번창해 일손이 모자라자 구 명예회장은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부친의 사업을 도우며 지냈다. 그러던 중 회사로 아예 들어와 사업을 도우라는 부친의 부름에 부산사범대 부속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1950년 교편을 놓고 기업인의 길로 들어섰다.
구 명예회장 혹독한 경영수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락희화학에 입사해 서울 화장품연구소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6·25로 인해 연구업무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채 부산으로 내려와 생산 현장에서 직원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그는 럭키크림 생산을 직접 담당하면서 손수 가마솥에 원료를 넣고 불을 지펴 크림을 만들고, 박스에 제품을 포장해 판매현장에 들고 나갔다. 또한 하루 걸러 숙직을 하며 새벽부터 몰려오는 도매상을 맞이하고,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공장가동을 준비했다.
흔히 경영수업이라고 하면 영업이나 기획부서, 해외지사에서 몇년 간 실무를 익힌 뒤 기회조정실장 등을 거쳐 경영자로 올라서는 것이 익숙한 관행이다. 이에 반해 구 명예회장은 '공장 지킴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십수년 공장 생활을 하며 현장에서 수련을 오래 했다. 사람들이 "장남인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할 정도였으나 구인회 창업회장은 "대장간에서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 데도 무수한 담금질로 무쇠를 단련한다.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름 없다"고 현장 수련을 고집했다고 한다.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소탈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인 그이지만 경영혁신을 위해서는 단호한 모습도 보였다. 구 명예회장은 개방과 변혁이 소용돌이치는 1980년대를 겪으며 위기감 속에서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을 1988년 발표했다.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을 벗어던지고 각 계열사의 '자율과 책임경영'을 제1원칙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내딛은 자율경영 행보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가로막혔다. 1989년 당시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진 노사분규 열풍이 럭키금성에도 불어닥친 것이다. 집단 상경한 노조 대표들은 회사 주위를 둘러싸고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노조 대표들은 "사장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지 않나. 회장님이 확실한 대답을 해달라"며 격앙했지만 구 명예회장은 "교섭에 관한 전권은 각 사에 있다. 사장이 안 된다면 나도 안되고, 사장이 된다고 하면 나도 된다"고 맞섰다.
노조원들은 돌아섰지만 결국 각 사는 연대파업이라는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노사분규의 후유증은 컸지만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계열사들은 더 이상 회장을 핑계 삼지 않았고, 노사 협상은 각 사의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운영됐다. 구 명예회장의 결단이 밑거름이 돼 자율경영 체제가 정착된 것이다.
구 명예회장은 항상 '멋진 은퇴'보다는 '잘 된 은퇴'를 꿈꿔왔다. 육상 계주에서 앞선 주자가 최선을 다해 달린 후 바통터치를 하는 것처럼 최고경영자로서 25년을 달려왔으면 주자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서다.
1995년 구 명예회장 은퇴와 함께 그룹 발전에 큰 공헌을 해온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 등 원로 회장들도 동반 은퇴했다. 새로 취임하는 회장과 젊은 경영진이 소신있게 경영 활동을 해나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임사를 마치고 원로 경영인들과 함께 임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식장을 빠져나간 것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
구 명예회장은 45년간 그룹에 몸담으면서 20년은 현장에서, 25년은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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